구이면 소재지에서 15분가량 더 달려 대덕마을과 계곡마을을 지나, 다리 하나를 건너야 비로소 장파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옛 절 장파사의 이름을 딴 마을 지명처럼 장파마을은 고요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쳤다. 전보다 길이 넓어졌다지만 울창한 산에 둘러싸인 아늑함만큼은 여전해서 아기자기한 꽃나무와 가로수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가 유독 크게 공명을 일으키는 듯하다.
■ 봄바람 맞으며 땅을 깨우는 사람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허리 숙여 잡초를 뽑는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어르신들이 보였다. “입구의 풍경이 마을의 얼굴”이라며 도랑 옆 둔덕에 무성한 풀을 뽑고, 꽃나무 묘목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흙을 덮고 있었다.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낫을 휘두르는데도 도라지, 박하, 냉이 등 식용 식물만 귀신같이 피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한쪽에서는 묵직한 도끼날이 장작을 가르는 소리가 마을의 정적을 깼다. 외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하길수 씨다.
내년 겨울 땔감을 미리 준비하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그는 “이 시기엔 땔감도 해두고 고추랑 감자도 심어야 해서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며 웃어 보였다. 옆 밭에서는 최인중 어르신이 풀약이 담긴 통을 등에 지고 옥수수와 콩밭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노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지.”라는 어르신의 투박한 한마디에는 평생 쉬지 않고 땅을 일궈온 농부의 부지런함이 배어 있다. 임순태 이장은 마을 정자 옆 90kg에 달하는 ‘들독’을 가리키며 옛 추억을 꺼내놓았다.
“모심기가 끝나면 술메기를 했는데, 그때 젊은이들이 이 들독을 번쩍 들어올려야 비로소 성인 대접인 ‘왼품(일대일 품앗이)’을 받을 수 있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 지네명당의 정기와 사라진 장파 지소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발걸음을 옮기면 전의이씨 문중의 역사가 깃든 ‘원모재’와 묘역이 나타난다. 모악산 줄기가 내려와 맺힌 이곳은 풍수지리상 지네가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로 오르는 ‘오공비천형(蜈蚣飛天形)’ 명당으로 이름나 있다.
지네의 다리만큼 자손이 번성하고 재물이 모인다는 길지답게 실제 전의이씨 문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풍수를 공부하는 학자들의 발길이 지금도 이어진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의 지리적 혜택이 땅의 기운에만 머물지 않는 것 같다.
산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 지하에서 샘솟는 지하수가 예로부터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한지(창호지)를 만드는 장파 지소가 있었다고 한다. 전의이씨 재실 뒤편 방죽 위쪽에 1960년대 중반까지 전주에서도 알아주던 한지 공장이 있었다.
그곳의 외동딸이었던 백봉덕 어르신은 “집마다 닥나무를 많이 길렀어. 근데 만들어야 할 종이가 많은데, 마을에서 나는 닥으로는 부족해서 임실 것까지 가져다 썼지.”라며 당시 번성했던 공장 풍경을 떠올렸다.
계곡 바위에 하얀 닥을 널어 말리던 풍경은 이제 옛이야기로 남았지만,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질 좋은 종이를 띄우던 마을의 자부심은 주민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선명하다.
■ 함께 배우고 나누는 시간 최근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공동체문화 활성화를 위한 ‘농촌사회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이번 사업은 완주마을통합마케팅지원단이 추진하는 찾아가는 교육·문화·돌봄 프로그램으로, 총 4회차에 걸쳐 예방교육과 체험 활동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진행된 3차시에서는 성폭력 예방교육과 푸드테라피가 진행됐으며 사례 중심 교육에 이어 호두피칸파이 만들기 체험이 이어졌다. 4차시에서는 보이스피싱 예방교육과 아로마테라피 체험이 진행됐다.
백봉덕 어르신은 “직접 와서 알려주니 이해가 잘 되고 도움이 됐다”며 “함께 만들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함임 어르신은 “보이스피싱 같은 건 막연히 무서웠는데 자세히 알려줘서 많이 배웠다”며 “처음 해본 아로마 만들기도 기분이 좋았다”고 전했다.
이난옥 부녀회장은 “주민들이 함께 모여 배우고 체험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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