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면 신사봉마을 원덕례 할머니 이야기
"이 손이 내 훈장이야"
‘건곤드래, 멜라추, 토종밤, 냉이, 감삐지, 깐쬭파, 호박고지, 꼭감, 고사리, 건취나물..’ 사계절을 정성스럽게 들여다보고 거둬들였을 작물들의 이름이 할머니의 수첩에 적혀있었다. 키우는 정성 못지않게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쓴 이름들이다. “공부를 못해서 글씨를 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내가 농사짓는 것은 쓸 줄…
Life Landscape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이 손이 내 훈장이야"
‘건곤드래, 멜라추, 토종밤, 냉이, 감삐지, 깐쬭파, 호박고지, 꼭감, 고사리, 건취나물..’ 사계절을 정성스럽게 들여다보고 거둬들였을 작물들의 이름이 할머니의 수첩에 적혀있었다. 키우는 정성 못지않게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쓴 이름들이다. “공부를 못해서 글씨를 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내가 농사짓는 것은 쓸 줄…
Archive
여든이 지나서야 꽃을 피웠네
비봉면 염암마을 끄트머리에는 몇 해 전 전주에서 이주해 와 나무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인이 있다. 이 지인 덕분에 나는 행정명인 염암마을보다 ‘소금바우’라는 옛 이름이 더 익숙하고 정겹다. 실제로 마을 뒷산에 ‘소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어, 마을 어르신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소금바우라고 불러왔다. 새로 터를 잡은 �…
할머니의 낙원, 감나무가 있는 작은 밭
밭두둑을 끼고 감나무 몇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할머니의 작은 밭 너머에는 고산천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안수산이 우뚝 서 있고 또 그 너머에는 6월의 하얀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감나무 잎사귀들이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 아주 작은 움막이 하나 있고 그 움막 안에는 호미와 낫, 소쿠리 같은 손때 묻은 농사 도구들이…
내가 하고 싶은 노동을 천천히 해 나가는 것
노동절을 하루 앞둔 날, 노동환 씨의 목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2025년 11월 법 개정으로 ‘근로자의 날’은 ‘노동절’이 되었지만, 무심코 튀어나온 익숙함에 그만 “내일 근로자의 날인데 쉬셔야죠?”라고 묻고 말았다. 아차 싶은 마음도 잠시, 그는 씨익 웃으며 “노동절이죠”라고 나지막이 정정해 준다. 사용자를 위해 부지런…
그저 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자(小子)
1994년 박일진 씨는 무소유와 영성 수련을 실천하는 공동체 ‘ 전원살림마을 ’ 의 수련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 그곳에서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 “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2 년 동안 했죠 . 수련생들 뒤치다꺼리하고 , 애들 수련생들 오면 같이 놀아주고 그랬죠 . 여태권 목사님 , 한…
그저 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자(小子) -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1 월의 새벽 6 시 . 집을 나선다 .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화산면 라복마을로 향한다 .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다가 산언저리 하늘 끝이 까만색에서 쪽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일 테다 . 화산면 화월…
쉬거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위크앤드! - 봉동 낙평리 유아름, 이종철 이야기 2013년에 임순례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 는 기존 사회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찾아 ‘남쪽’으로 떠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산에서 빵집 ‘구운’을…
파란만장 유쾌한 왕언니 - 봉동읍 둔산리 왕안라 이야기 일흔을 넘긴 왕안라 씨 (1953 년생 ) 에게 최근 새로운 직장이 생겼다 . 완주 삼례에서 20 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지만 , 코로나 19 위기를 겪으며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 집에서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던 왕 씨는 친구의 권유로 완주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사…
서북 머스매가 토끼어매, 염생이 할매가 되기까지 - 고산면 어우리 이인수 할머니 이야기 이인수 할머니는 1941 년 충남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에서 태어났다 . 그 시절의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이름을 잃고 , ‘ 누구의 아내 ’, ‘ 누구의 어매 ’ 로 불렸다 . 유년 시절에는 비교적 풍족한 삶을 누렸지만 , 원치 않�…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힌 관계들의 힘 - 고산면 상리 김지연 이야기 김지연 씨가 일하는 사무실은 내가 일하는 곳과 매우 가까운 곳이다 . 오랜만에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 지연 씨는 완주친환경농업인협회가 운영하는 친환경자재 판매점에서 실장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다 .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편안…
늙음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몇 해 전 ,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김영옥 선생님이 진행하신 ‘ 노년되기 : 나이 듦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 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 시골의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이지만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생애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때였다…
다부진 팔뚝과 단단한 손의 이력 -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어디에서든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사람이 있다 . 으스대지 않고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어려움 있는 곳을 향해 주저하지 않고 성큼 다가가는 사람 . 이렇게 자신을 표현한 글을 읽고 있을 유 미 (1962 년 생 ) 씨의 표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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