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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6.05.08

굽이굽이 계곡 끝 구이면 장파마을

창호지 공장 고명딸 백봉덕 어르신

창호지처럼 켜켜이 쌓인 84년 돌아보니 전부 추억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6.05.08 17:37 조회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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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파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백봉덕(84) 어르신의 이야기는 한 마을의 역사와도 닮아있다. 지금은 조용한 농촌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 이곳은 창호지를 만들던 공장이 있던 곳이었다. 어르신은 그 공장의 외동딸로 자라며 비교적 넉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70여 년 전 한지 만들던 기억을 줄줄 설명하는 백봉덕 어르신
70여 년 전 한지 만들던 기억을 줄줄 설명하는 백봉덕 어르신

당시 장파마을은 맑은 계곡물과 지하수 덕분에 창호지를 만들기 좋은 환경이었고, 어르신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문창호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닥나무로 만든 창호지는 전주로 나가 값이 좋게 팔린 덕분에 집안 형편도 안정적이었다.

어르신은 “열여덟 살까지는 세상 어려운 줄 몰랐다”고 회상할 만큼 고생과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억 속에는 늘 분주한 공장의 풍경이 남아 있다. 오빠들은 아버지를 도와 닥껍질을 삶고 두드리는 일을 맡았고, 봉덕 어르신은 어머니가 준비한 반찬을 들고 공장으로 오가는 심부름을 했다.

직접 창호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집과 공장을 오갈 때마다 자연스레 제작 과정을 눈에 담았더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과정을 줄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닥나무를 쪄서 껍질을 벗겨낸 다음, 널찍한 닥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하염없이 두들겨야 해. 그래야 보들보들하게 섬유가 풀리거든.

뒷마당 한켠에 아직 남아있는 닥나무
뒷마당 한켠에 아직 남아있는 닥나무

그걸 맑은 물에 넣고 닥풀이랑 섞어서 발로 찰랑찰랑 흔들어 뜨면 겹겹이 쌓인 종이가 만들어져. 물기를 쫙 빼고 뜨거운 방바닥에 한 장씩 붙여 말리면 창호지가 되는 거지.” 열아홉에 이웃 총각과 결혼하며 시작된 삶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한때 남편의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아 서울로 올라가 살던 시절 고생도 많이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원예원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히자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이후 부부는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고향인 장파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닥을 펼쳐서 말리던 닥돌
닥을 펼쳐서 말리던 닥돌

세월이 흐른 지금 백봉덕 어르신 부부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년 전에는 KBS ‘우리 집 금송아지’에 출연해 대대로 간직해온 떡살과 다식틀로 주목받기도 했다. 봉덕 어르신은 “금송아지 탄 기념으로 사비 들여 마을 사람들한테 잔치 한턱냈다”고 웃었다.

창호지 공장의 외동딸로 자라 고생을 모르던 시절, 결혼 후 겪은 굴곡,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의 삶까지 백봉덕 어르신은 그 모든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유쾌하게 풀어냈다. 힘들었던 순간조차 크게 부풀리지 않고 웃으며 되짚는 태도에는 오랜 시간 삶을 버텨온 사람만의 단단함이 있다.

현장 사진

창호지 공장 고명딸 백봉덕 어르신 사진 1 창호지 공장 고명딸 백봉덕 어르신 사진 2 창호지 공장 고명딸 백봉덕 어르신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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