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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6.04.06

믿음으로 이어진 용진 양전마을

휘돌아 마을 한 바퀴

100년 교회 종소리 따라 나무와 사람이 함께 나이 드네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6.04.06 16:43 조회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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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질고 기름진 땅, 양전(良田) 양전교회를 지나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노란색과 파란색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은 재활용 봉투를 정리하고, 대한노인회 어르신들은 마을 곳곳을 살피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1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전교회
1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전교회

부지런히 일을 끝낸 이형구 어르신께 마을 이름에 얽힌 옛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이 동네는 개울이 흘렀다고 해서 ‘오랜계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아주 옛날부터 그냥 그리 불린 이름이라 정확한 뜻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 친할머니가 얘기해주셨는데, 옛날 이 동네 사셨던 분이 봉동 서당에서 공부해 과거에 합격하셨대. 경상도 영천으로 부임하셔서 ‘영천 어른’이라고 불렸지.

순종 임금 때 한양에서 벼슬일을 하다 부모상을 치르러 고향에 내려오셨는데, 그때 오랜계골보다 ‘양전’이라 부르는 게 낫겠다고 하셔서 그 뒤로 양전마을이 됐어.” ‘어질 양, 밭 전’. 이름처럼 기름지고 넉넉한 땅이라 그런지 이곳은 예전부터 논과 밭농사가 발달했다.

지금도 흔한 하우스 시설 없이 벼농사와 대파, 마늘 등 작물 재배가 이뤄진다.

■ 회관에서 점심 먹고 대화 나누는 일상 다른 마을보다 유독 마을회관에 자주 모이는 것이 양전마을 사람들의 특징이다. 특별한 행사가 아니어도 11시쯤이면 하나둘 회관으로 발길이 향한다.

이날 점심상에는 윤영례 부녀회장의 비법 양념장으로 만든 매콤한 오리주물럭과 세발나물무침, 직접 담근 동치미와 김치가 올랐다. 신언순(85) 어르신은 “일 없으면 점심에 모여서 같이 밥 먹는 게 좋다”며 “혼자 있으면 적적한데 여기 오면 사람들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아”라고 말했다.

밥상머리에서 시작된 수다는 식사가 끝난 뒤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원예 수업과 그림 수업으로 오후 시간을 보내는 동안 회관은 내내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양전마을은 최근 완주군 ‘생생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을 곳곳에 꽃을 심고 경관을 가꾸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은 행복플러스농장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갈 예정이다. 여기에 어르신들을 위한 반찬 나눔과 이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병원이나 목욕탕으로 모셔다 드리는 돌봄 활동도 함께 이어진다.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

조중관 개발위원장은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어울리는 게 가장 큰 힘”이라며 “앞으로 꽃을 심고 환경을 가꾸는 일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이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돌봄과 나눔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산책길 속 펼쳐진 봄꽃과 나무 도감 식사를 마치고 밭을 살피러 나가는 최쌍원 어르신을 따라 마을 산책에 나섰다. 40년 넘게 관상수를 길러온 어르신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가의 나무를 척척 알아맞혔다. “저건 사철나무, 이건 산수유. 저기 자목련도 있네.

자목련은 원래 백목련보다 늦게 피어.” 마을 중심부의 작은 땅에는 남천, 주목나무, 호두나무, 매실나무가 알차게 자리잡고 있었다. 커다란 주목나무 옆으로는 그 가지를 꺾어다 심은 작은 묘목이 자라고 있었다. “저렇게 자라는 데 1년이 넘게 걸렸지.

주목나무는 느리게 자라는데, 그렇다고 방치만 하면 안 돼. 계속 들여다보면서 나무한테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야지.” 쌍원 어르신도 집에서 제법 떨어진 밭에 대파와 양파를 기르고 있다.

“우리집 대파는 두 쪽씩 붙어있는 거 없이 아주 잘 자랐다”며 웃은 어르신은 날이 더 따뜻해지면 손질해둔 생강을 심을 예정이다.

■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일구는 중 쌍원 어르신과 헤어진 후 독특한 분위기의 집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옥상에서 지붕을 손보고 있는 김태원 어르신이 보였다. 마을에서 ‘맥가이버’로 통하는 분이다.

“내일부터 비 온다고 해서 미리 고치고 있다”는 태원 어르신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능숙하게 손을 놀렸다. 탄광 엔지니어, 공업사 수리 기술자를 거쳐온 어르신은 직접 만든 도르래로 무거운 자재를 끌어올리고, 간이 승강장치로 지붕과 지면을 자유롭게 오갔다.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나누고 있다.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나누고 있다.

넓은 밭 한쪽에서는 이영림(65) 씨가 쪽파 사이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영림 씨는 “쪽파는 한 곳에서 붙어 자라면 제대로 영글지 않는다. 이맘때 미리 솎아줘야 나머지가 실하게 자란다”고 설명했다. 바구니 가득 담긴 솎아낸 쪽파를 보니 두세 번으로 끝날 양이 아니다.

쪽파를 다 솎아내면 무성하게 자란 시금치를 캘 차례란다. 영림 씨는 밭농사뿐 아니라 남편과 잔디 농사도 2천 평 넘게 지어왔다. 이 마을에 시집오자마자 삽으로 잔디를 퍼담으러 다닌 것이 농사의 시작이었다. 기어다니는 아기를 잔디밭 한쪽에 앉혀두고 땀을 흘리던 시절도 있었다.

세 딸이 모두 커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는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고된 농삿일 속에서 쌓인 유쾌하고도 서린 사연들을 딸의 도움을 받아 다듬어 라디오 방송에 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사연이 소개돼 받은 상품권으로 온 가족이 보쌈을 먹었던 기억을 웃으며 꺼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시 마을 중심부로 돌아오자 고향에서 뿌리를 내린 젊은 얼굴이 보였다. 전철기 씨는 2020년부터 양전마을에서 식품제조가공업체 ‘철기식품’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만경강에서 잡은 다슬기와 민물고기로 장조림, 진액, 국을 만들어 판매한다. 완주몰에도 입점했다고 하니 양전마을의 맛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날도 머지않았다.

밭에서 쪽파를 솎아주고 있는 이영림 씨
밭에서 쪽파를 솎아주고 있는 이영림 씨

현장 사진

휘돌아 마을 한 바퀴 사진 1 휘돌아 마을 한 바퀴 사진 2 휘돌아 마을 한 바퀴 사진 3 휘돌아 마을 한 바퀴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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