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세월을 말한다 . 장장하게 붙어있던 전화번호의 숫자도 하나둘 떨어져 이제는 네 자리의 숫자만 남았고 , 방앗간이란 글자도 성하지 않다 . 하지만 여전히 현떡방앗간은 살아있다 . 곡식 빻는 기계가 돌아가고 ,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
40 여년이란 가늠할 수 없는 시간동안 조현영 (84)- 한현숙 (81) 부부는 한결같이 이 자리를 , 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 . 현떡방앗간이 처음부터 방앗간은 아니었다 . 1973 년께 부부가 전주에서 삼례로 온 후 처음 이 자리에서 문을 연 것은 전업사였다 .
이후 사람을 두고 미장원을 운영하다 중화요리 전문점을 했고 잡화상을 거쳐 철물점을 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방앗간을 열었다 . “ 장사하는 사람은 남 안 속이고 할 수가 없어 . 남 속이기 싫은 마음으로 장사를 하니께 뭘해도 장사가 안되는 거여 .
그러다 내가 돌아다녀 보니까 방앗간은 남이 가져온 걸 그대로 가공만 해주는거더라고 .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 없겠다 싶었어 . 그래갖고는 방앗간을 시작한거여 . 상대방에 상처가 안가고 남을 속이지 않는 거 .” 시간의 더께를 고스란히 입은 기계들. 삼례 구시장에 위치한 현떡방앗간 .
과거에는 이 인근이 시장의 중심이었고 , 익산 왕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 사람이 많았고 장사가 잘됐다 . 지금 방앗간이 있는 이 거리는 과거 술집이 많았다 . “ 여 앞에 대구집이 있었고 옆에는 신성여관이랑 통정하숙집이 있었어 . 이 방앗간도 원래는 신풍옥이란 술집이었어 .
우리 방앗간기계 있는 곳 있잖어 ? 거기가 옛날 신풍옥의 홀이었지 . 사람들 노는 . 그걸 내가 새로 했어 . 근디 이 집이 원체 고가 ( 古家 ) 라서 짜그라지더라고 . 그래서 또 다시 했어 .”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 집에서 떡을 해먹던 시절이니 방앗간도 당연지사 장사가 잘됐다 .
특히 명절 때면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 잠도 못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던 ,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절 . 불을 떼서 솥단지를 걸어놓고 쌀을 쪘고 , 만들어진 떡은 각자 집으로 가져가 직접 썰어먹었던 때다 . “ 옛날에 바쁠 적에는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렸지 .
명절이면 우리 때부자 됐어 . 한 백만원 벌었던가 . 지금은 한달 내 해도 십만원 못 벌어 . 옛날처럼 집에서 떡을 해먹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다 사먹잖아 .” 정직하게 한 평생을 살아온 조현영-한현숙 부부. 부부의 겨울은 늘 따뜻하다.
요즘은 손님보다도 , 동네 이웃들이 서로 어울리기 위해 현떡방앗간을 찾는다 . 모여서 재미화투를 치기도 하고 수다를 떤다 . “ 우리가 방앗간 주인이 될 거라 어디 상상이나 했겄어 ( 웃음 ). 이젠 힘들어서 못해 . 여긴 돈은 못 벌어 . 우린 고지식해서 거짓말도 못하거든 .
몸도 약해서 장사 하도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거야 . 그래도 요새는 김장철이라 가끔 누가 와서 고추도 빵구대 . 기냥 여기는 양로당이야 . 매일 7~8 명 썩은 놀러와 . 사람들이 안 오면 우리가 심심해 . 인자 습관이 된 거 같아 .
이제 외따로 못 살어 우린 .” ‘ 남을 상처 주지 않고 속이지 않기 위해 ’ 방앗간을 시작한 노부부 . 그들의 고운 심성 덕분인지 그들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만 있어왔다 .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자 , 좋은 이웃 .
“ 방앗간 초반에 실수해서 남한테 값을 물어준 적은 있어도 돈 안내고 도망간 사람은 하나도 없어 . 싸움하는 법도 모르지만 그 사람들도 그랬어 . 평생 싸워본 일이 없어 우린 .” 어느새 밖이 어둑해졌다 . 현떡방앗간에도 불이 밝혀진다 . 그 빛이 참으로 따뜻하다 .
이제는 사람 온기가 없는 곳에서 홀로 살 수는 없다는 노부부 . 그것이 그들의 겨울이 따뜻한 이유다 . 자신들을 잊지 않고 방앗간을 찾아오는 이웃들의 온기 덕에 겨울이 따뜻할 것이라고 , 노부부는 그리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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