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장미경의 삶의풍경

멧돼지가 출몰하면 백씨 형제를 불러주오2017-12-04

멧돼지가 출몰하면 백씨 형제를 불러주오

멧돼지가 출몰하면 백씨 형제를 불러주오

외율마을 백정식

 

 

소설小雪이 지났다. 완주에 내린 첫눈은 제법 거창했다. 농작물이 자라던 논밭은 텅 비어있지만, 그 비어있음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농민들은 찰나의 쉼을 얻기도 한다. 그 쉼은 멈춰있지 않다. 저마다 고물거리는 움직임이 있다. 멀리서 보면 산과 논밭과 강이 흐르는 고요한 시골풍경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삶이 있다. 올 겨울에는 사냥하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봤다. 들여다보기 전의 내 상상 속 사냥꾼은 털모자를 쓰고 총을 들고 눈 덮인 산 속을 발로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던 배우 최민식의 거친 모습이었달까.

 

사냥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화산의 단골 손두부집에서 시작됐다. 갈 때마다 군인들의 전투복 같은 옷을 입은 대여섯명의 아저씨무리들과 마주친 일이 있었다. 손두부집 할머니에게 무슨 일하는 분들이냐고 물으니, 멧돼지 잡는 사냥꾼들이라고 하셨다. 고기는 냄새도 맡기 싫다며 밥 때 되면 매일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온다고 했다. 사냥꾼들의 채식이라. 식당 앞 평상에서 이 쑤시는 아저씨들과 두런두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정식이 형님, 정식이 삼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식이라고 불리는 그. 현재 건재상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고산 외율마을에 살며 읍내 건재상에서 일하는 백정식(46)씨다.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정식이 형님혹은 정식이 삼촌이라고 불리는 친근한 사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키 크고 인물 좋고 일 잘하고 서비스 좋고 농사 잘 짓는 정식이라고 불리는 사람. 손수 만든 모과차를 난로 위 주전자에 따뜻하게 끓여서 지나는 사람에게 한 잔씩 주는 사람이다. 사람 좋아하는 백정식씨가 일하는 건재상 사무실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늘 모여 앉아있다.


백정식씨 취재를 앞두고 산 속을 헤매며 동반 사냥을 나가야 하나, 실제로 멧돼지를 보게 되는 것인가, 걱정 반 근심 반이었다. 하지만 올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당분간 야생동물포획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사냥 동행취재는 물 건너갔지만 백정식씨가 끓인 모과차를 마시며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농민들의 골칫거리 해결사 포획봉사단

사냥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사냥꾼들이라고 부르지만 이들 대부분은 본업이 있고 사냥은 자원봉사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유해야생동물을 포획하는 포획 봉사단이다. 완주군의 포획 봉사단은 13개 반 39(16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가가 피해 발생 사실을 읍·면 또는 군청에 신고하면 이를 확인한 후 해당 지역에 포획허가를 내고 출동해 유해 야생동물을 잡는다고 한다. 정성스럽게 농사지어 수확만을 앞두고 있는 농민에게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야생동물들은 큰 골칫거리다. 논 밭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설치해 유해동물을 차단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멧돼지는 식욕만큼 번식력도 왕성해 매년 5월 무렵 보통 7~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포획봉사단들은 허가받은 곳에서 적극적인 수렵활동으로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야생동물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백정식씨는 십년 전부터 두 살 위 친형님과 함께 이 일을 하고 있다.

 

“21. 우리 백씨 형제가 한 팀이에요. 사냥은 형님이 하고 나는 운전하고 조수 일을 하는 거지. 고산면하고 화산면을 돌아다니고 있죠. 주로 멧돼지, 고라니, 꿩을 잡아요. 활동하는 시기는 따로 없이 일 끝나면 매일 밤에 사냥을 나가는데 요즘처럼 조류인플루엔자 발생하면 사냥 쉬어야 하고 명절 때도 사냥이 금지되어 있어요. 엽총은 고산 파출소에서 관리해요. 우리가 총을 사용하는 시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에요. 밤에 작업할 때 주로 서치를 켜서 작업하죠.”

 

낮에는 동물들이 산에 숨어 있어 산을 헤치며 사냥을 한다지만, 밤이 되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동물들이 농가로 내려온다고 한다. 밤에 사냥하는 백씨형제는 마을 주변 길로 차를 운전하며 밭을 향해 서치를 비추면 야생동물 눈빛이 반짝 빛날 때 총을 쏜다고 한다.

 

나는 밤에 술 먹고 놀고 싶은데 자꾸 형이 나가자고 하니까 따라 나가는 거죠. 형 혼자서도 사냥을 하지만 혼자서는 힘든 일이에요. 십년동안 한 일이지만 매번 나갈 때마다 조심스럽고 위험하죠. 총알이 이백미터를 날아가는데 그 총알 맞고도 도망가는 멧돼지가 있어요. 그럴 때 무섭지. 멧돼지가 사람을 덮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멧돼지가 보기보다 무거워요. 차에서 몇 백미터 떨어져서 잡았을 때는 사람 힘으로 못 들어요. 그럼 로프를 멧돼지에 묶어서 차로 끌어내서 옮기죠. 하루 저녁에 한 마리도 못 잡을 때도 있고 5~6마리 잡으면 많이 잡은 거지. 작년 겨울에는 아침 일찍 고산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어요. 파출소 안에 멧돼지가 들어왔다고. 우리 형제가 출동해서 인명피해 없이 잡았던 일도 있었네.”

 

야생동물피해농가의 민원으로 밤마다 자원봉사로 포획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런 활동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들고 사냥하는 이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밤에 총소리를 듣고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신고전화를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냥을 할 때는 관할파출소와 매번 위치확인을 하며 사냥을 한다.


오복림 노모와 함께



고산 밤실에서 태어나 청년시절을 보내고 삼십대 무렵 잠시 군산에서 살 때도 백정식는 늘 고향이 그리웠다고 한다. 형님이 조르니까 마지못해 밤마다 같이 사냥을 나간다고 하지만 백정식씨는 이 모든 일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하다. 어린 시절 어울려 다니며 산에서 칡 캐고 땔감나무하고 새총으로 새잡고 올무로 너구리, 토끼, 꿩 잡던 추억. 놀면서 일을 배웠다. 마을 잔치 때 어른들이 돼지 잡고 소 잡을 때 어깨 너머로 배웠던 도축방법들. 삶의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백정식씨도 마을의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이거저것 많이 해봤어요. 관광버스도 해봤다가 크레인도 했다가 지게차, 포크레인, 페로다, 기중기, 버스자격증, 하다보니까 자격증을 많이 땄네. 아무래도 거친 현장에 있으면 사람도 좀 거칠어야 하는데 난 생긴 것만 이렇지 안 거칠어요. 그래서 현장일 포기하고 고향으로 온 거지. 거친 현장에 있으려면 싸움도 하고 욕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지. 내가 어렸을 때는 소 키워보려고 전주농고를 갔어요. 그때는 목장 운영하는게 꿈이었어요. 근데 학교 가서 실망을 했죠. 땅 없고 돈 없는 사람은 힘들더라구요.”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 질 것이다. 그의 노모와 형님부부와 함께 사는 집 앞마당에는 염소 두 마리와 개 한 마리 닭 오십여마리가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으니까.


고산면 외율마을에 위치한 집(위)과 백정식씨가 키우고 있는 염소(아래)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팽나무 아래 두 여자 이야기
다음글
싸움꾼 목사님의 1987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