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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석과불식(碩果不食)2017-06-07

할머니의 석과불식(碩果不食)

할머니의 석과불식(碩果不食)

화산 대평마을 박서운 할머니

 


아흔이라는 말은 묘한 울림이 있다. 100을 기준으로 90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숫자인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90을 아흔이라고 부르면 그것은 어딘지 아득하고 먼 곳에 있는 느낌이 든다. 아흔 살이 되면 세상은 어떤 풍경으로 보일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아득하고 먼 시간대 살아가고 계시는 박서운(98) 할머니를 봄이 끝나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의 첫 날 화산면 대평마을에서 만났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저기 대아리 저수지 근처 신당마을이여. 거기서 여기로 시집왔는데 그때가 언제쯤인지 이젠 기억도 안나. 살면서 이런 저런 많은 일을 겪었어. 그런데 그 일들이 언제 일어난 일들인지 무슨 일들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 아들 둘 딸 셋 뒀는데 월남 파병 가서 하늘나라로 먼저 간 아들 일만 또렷하게 생각나. 다른 일들은 잘 생각이 안나.”


손지갑에는 꼬깃하게 접은 돈이 들어있다. 증손주들 용돈을 주기도 하고 동네사람들 밥을 사주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스물이 되면 약관, 서른이 되면 이립, 마흔이 되면 불혹 그리고 일흔이 되면 고희라고 해서 그 나이 때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마음가짐과 세상에 대한 태도를 교훈적인 단어로 표현해 놓았다. 그렇다면 아흔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식의 정의가 가능할까. 할머니는 옛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기억하는 것에 대한 기준과 방식이 달라져서 생기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온 날들을 시간대별로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할머니는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젊은 사람들의 시간과는 결이 다른 과거와 미래가 느리고 아득하게 흘러갔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다시 흘러가는 새로운 차원의 시간대를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내외와 함께 아득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할머니에게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이웃이 생겼다. 최숙씨와 조정림씨가 운영하는 에버팜이라는 농장이 할머니의 집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할머니는 오랜 이웃을 대하듯 그녀들을 대했다고 한다. 매일같이 농장에 들려 수다를 떨고 호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나눠주고 농사 때에 맞춰 조선아욱, 맷돌호박, 검은 옥수수, 완두콩의 씨앗을 건네주곤 했다.


할머니 주머니 속에는 늘 사탕이 들어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처럼 건네는 사탕


최숙씨와 박서운 할머니



숙이가 나한테 무지하게 잘혀. 할마니 할마니 했사면서 잘혀. 할머니 자빠지지 말라고 길도 깔아놓고, 앉아서 쉬어가라고 의자도 놓고. 숙이가 딱 들러붙어서 날 좋아하나봐. 그래서 뭐시고 씨가 생기면 갖다 주지. 먹고 살으라고. 예전에는 다 씨를 받아서 심고 또 나눠서 심고 그랬지. 예전에는 모종이 있었간디. 그런데 요즘은 뭐시든지 사다 써.”

 

할머니께서 그녀들에게 씨앗을 나눠주는 이유는 두 가지다.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해야 같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농촌공동체가 작동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이웃끼리 씨앗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씨앗을 나누는 것은 모든 것을 나누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각자 시장에 나가 필요한 모종을 돈을 주고 사오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어쩌면 할머니의 소박한 씨앗 나눔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작년 가을, 호박 따러 밭에 나가다 넘어진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고 한다. 그 일로 지금은 농사일이며 일상생활이 다소 불편한 상황이다. 덕분에 요즘은 숙씨가 할머니 오며가며 편히 앉아 쉬시라고 만들어 놓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기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보는 거지. 나는 여기가 제일 좋아. 동네에 학교도 있지 지서도 있지 서울보다 더 좋아. 전주 딸내 가서도 한두 달 씩 있다 오지만 그래도 여기가 제일 좋아. 내 집 내 고향이 좋지. 여그가 제일 좋아.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해. 하도 않고 시키지도 않고. 이 근방에서는 내가 나이 제일 많이 먹었어. 나도 자식들 키우느라 욕 봤지. 지금은 자식들이 돈 줘서 써. 시방이 세상 좋아.”

 

할머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됐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말 속에 슬픔 같은 것은 담겨져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으로 인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된 삶을 할머니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지금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에게 백세 넘어 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는 말은 건네지 못했다.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루하루 평화롭고 담담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신 할머니에게 오래오래라는 말은 와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할머니의 시선이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로 향했다.

 

저기 새들 봐. 널러가네.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내가 새 밥을 챙겨줘. 쌀도 주고 보리쌀도 주고. 고양이 개밥은 안 챙겨도 새 밥은 챙겨. 새는 불쌍해. 널러 다니면서 못 먹으니까. 금방 한 세상 넘어가. 한 세상 넘어가고 늙고 병들고 아프고 그러면 아무 소용없어. 나는 한 세상 잘 살았어. 그래도 아이 키울 때가 재미있었어. 고물고물 클 때. 고생스러웠어도 그랬냐 저랬냐 하면서 아기 키우던 때가 좋았어.”

 

석과불식碩果不食. 씨 과일은 먹지 않고 남겨 놓는다는 말이다. 할머니에게서 석과불식의 의미를 배운다. 에버팜 숙씨네에게 채소씨를 나눠주고 하늘을 나느라 먹이를 못 먹는 새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아흔 즈음의 할머니에게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석과불식하며 사는 삶을 다시 배운다.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할머니의 오래된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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