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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 구재마을 김성원 어르신2017-05-01

경천 구재마을 김성원 어르신

나의 아름다운 정원

구재마을 김성원 어르신

 

산수유, 매화가 봄을 알리고 수줍은 꽃길을 따라가 보니 벌써 오월이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피어나고 온통 형형한 연둣빛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완주의 곳곳이 절경이다. 하루 시간을 내서 화암사에 올랐다. 화암사에 사는 까만 개의 안내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구재마을 초입의 라일락 무리를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 라일락 나무 너머로 하얀색, 자주색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만개한 진풍경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나니 그제 서야 나무아래 앉아계신 어르신이 눈에 띄었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이 꽃나무들의 주인이 어르신이냐고 묻자, 들어와서 꽃구경 하라 신다.

봄날의 기운이 가득 담긴 곳. 이곳은 김성원(71) 어르신의 평생의 꿈이 담긴 정원이다.

 

젊은 시절부터 꿈꾸던 것들이었는데 은퇴하고 이제 서야 마련했지. 마음은 아직도 30대 청년인데 말이야, 이제 몸이 안 따라주네. 일하다 힘들면 이렇게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는 거지.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노루 사슴이 뛰놀고 들소가 노닐고 걱정 근심 없이, 아귀다툼 없이 사는 것을 원했지.”

 

꽃나무와 함께한 생애

노루, 사슴, 들소는 없지만 닭 여러 마리와 듬직한 황구가 있고 정성스런 정원에 감탄한 구경꾼들이 있다. 어르신의 정원에는 봄꽃부터 시작해 가을까지 늘 꽃이 피어 있어,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차를 멈춰 세우고 한참을 구경하다 간다고 한다. 그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정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주고받는 다고 하니, 이쯤하면 정원 해설사 명함을 만드셔도 될 것 같다. 하얀 민들레가 가득한 정원의 작은 길을 따라 꽃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색능수도, 남경도화, 밥태기꽃, 옥매화, 붉은 꽃 마로니에 등 봤지만 스쳐지나갔던 꽃의 이름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보통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가면 꽃나무들의 이름과 특징 등 정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성원 어르신의 설명은 독특한 점이 있다. 모든 꽃나무들의 생애사를 이야기 해주신다. 마치 함께 자란 누이 이야기 하듯, 어르고 달래서 키운 자식 이야기 하듯 말이다. 꽃나무들의 나이가 대부분 오십년에서 이십년에 이른다. 이십대 청년 시절부터 함께 했던 꽃과 나무들이니 그저 식물이 아닌 가족과도 같은 것이다. 꽃나무들의 생애사를 듣다 보니 어르신의 생애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정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꽃나무는 71년도에 심은 철쭉이라고 한다.

 

내 여동생이 정읍으로 시집을 갔는데 어머니가 딸집에 갔다 오면서 그 집 마당에 철쭉을 몇 뿌리 가져온 것을 내가 심었지. 그 철쭉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거지. 우리 아들들 보다 나이가 더 많아, 저 놈이. 우리 집에 있는 철쭉들은 대부분이 저 놈 자식들이야.”

 

오래 전에 데려온 나무가 새로운 땅에 적응해서 번식하는 것. 이것을 자식을 낳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어르신의 정원은 마치 복작거리는 대가족 같다. 작은 나무들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 나무의 할머니도 있겠네요?” 어르신은 주저 없이 작은 나무의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신다. 그렇다면 라일락의 할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다.

    

 

 앞마당에 앉아 쉬고 계시는 김성원 어르신.

 

 

라일락과 할머니

김성원 어르신의 고향은 덕천리다. 지금은 삼봉지구 택지개발로 마을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다. 고향을 떠나 이주할 곳을 찾아야 했다. 가족과도 같은 나무들을 다 데리고 가야 해서 땅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고심 끝에 경천으로 터를 결정했고 2009년에 나무들의 대이동이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자갈이 많은 녹두밭 웃머리였다. 1년 동안 아들들과 작업하면서 나무 이사를 마치고 2010년이 돼서야 사람이 이사 왔다. 청년시절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 땅의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1974년 고향 땅에 심었던 라일락나무는 경천으로 이주해서 대가족을 이뤘다. 덕천리는 어르신의 할머니 때부터 살았던 곳이다. 어르신의 할머니는 정기향님으로 덕천교회 설립자다.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운동을 하셨던 분이라고 한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어르신의 평생 신념은 자유와 평등이다.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 어린 시절에 느낀 것이, 그 작은 동네에서도 왜 힘 있는 사람은 잘 살고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못살아야 하는 것인가. 왜 평등하지 못한가가 늘 불만이었어요. 지금도 변함없어요. 자유평등이라는 내 평생 신조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유로운 것을 좋아해서 취직할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집안에 논밭은 있으니까, 그냥 농사짓고 살라고 했지. 그런데 집안의 아들은 나 하나고 어머님이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어서 아들 하나 있는 거 꼭 대학 나와서 직장생활 했으면 했던 거지.”

 

23살 무렵 시작한 교사생활이 평생직장이 되었다. 중학교 교사생활 할 때도 선생님 반의 급훈은 언제나 서로 사랑하며 참되게 살자였다고 한다. 성인이 된 졸업생을 언젠가 길에서 만났는데 반갑게 인사하면서 잊지도 않고 급훈을 크게 외쳤다고 한다.

 

나는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사람 괴롭히는 것은 못 봤어요. 우리 반에서 그런 일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지. 학교에서 주먹 좀 쓴다는 놈들이 우리 반 되면 끽 소리를 못했지. 나는 언제든 약자 편이었으니까.”

    

꽃을 좋아하는 취향이 비슷했던 장인어르신이 장계에서 200주 넘게 캐서 한 트럭 보내주신 목단.

김성원 어르신의 아름다운 정원.

 

 

 

귀한 꽃구경하러 언제든 오시요

어르신 정원의 꽃나무 이야기가 풍성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돈이 오가는 거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수소문해서 귀한 나무나 꽃을 키우고 있는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도인들이 서로를 알아보듯 꽃나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나보다. 자신의 집에서 귀한 꽃나무를 가지고 가서 다른 집의 것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정원은 풍성해졌다. 모든 꽃나무가 소중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꽃이 목단이다. 이 목단의 생애사를 물었다.

 

장인어른 댁에 있던 꽃인데 그 분도 꽃나무를 좋아했지. 취향이 비슷한 사위를 얻어서 좋으셨나봐. 처갓집이 장계였는데 그 멀리서 목단을 캐다가 200주 넘게 한 트럭 보내주셨지. 자주색 목단은 많은데 노랑목단은 참 귀하거든. 귀하게 여겨서 가깝게 두고 보려고 집 바로 옆에다 심었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주 잠깐 피었다 지는 귀한 노랑 목단이 55일쯤이면 만개한다고 한다.

새참거리 사들고 어르신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소풍 가야겠다.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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