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분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야만의 전쟁 뉴스를 끄고 이차크 펄만이 연주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에 귀 기울여 봅니다. 잔잔한 슬픈 선율이 비명으로 들립니다. 제발 그 잔혹한 전쟁의 폭력 멈추어 달라고. 왜 21세기 대명천지에 인류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홀로코스트 같은 비극을 재현하려 하는 거냐고.
유대인 출신의 펄만에게 연주하게 한 이 주제곡은 죽음의 골짜기를 빠져나온 이들의 흐느낌이자 죽어간 사람들을 향한 진혼곡입니다.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이 공기를 가를 때, 우리는 스크린 속 흑백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가졌던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를 떠올립니다.
그 작은 생명이 무력하게 사라져갈 때 느꼈던 그 참혹한 상실감이 선율에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음악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단히 고통스럽고도 당혹스러운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이 곡의 핵심은 동유럽 유대인 전통 음악인 클레즈머(Klezmer)의 정서에 닿아 있는 특유의 떨림에 있다 할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결코 매끄럽게만 흐르지 않습니다. 마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노인의 음성처럼, 음과 음 사이를 잇는 비브라토에는 깊은 탄식과 절규가 서려 있습니다.
단조의 우울한 선율이 반복되면서 점차 고조될 때 우리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부조리한 폭력과 차별의 역사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작곡가 존 윌리엄스는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절제하고 바이올린이라는 단 하나의 독주 악기를 앞세움으로써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 매몰된 개인의 고통에 집중하게 합니다.
"한 생명을 구하는 사람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은 이 음악의 도덕적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쉰들러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유대인들을 구해냈던 그 숭고한 행위는, 이 애절한 선율을 통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성 아래 이 음악을 다시 듣는 일은 고통입니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하던 민족의 후예들이, 이제는 현대식 무기와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민족을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과거 게토에 갇혀 죽어갔던 이들의 슬픔을 대변하던 이 선율은, 이제 장벽에 갇힌 채 물과 식량, 전기가 끊긴 채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학교에서 폭격으로 사망한 이란 여학생들의 울음소리와 겹칩니다.
이 주제곡이 상징하던 인도주의적 연민과 생명의 가치는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자행하는 무차별적인 파괴와 민간인 살상 앞에서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피해자라는 서사가 현재의 가해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패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욱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이 비극의 배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자본의 정치 논리입니다. 미국 정계와 경제계를 장악한 유대 자본과 정치권 스캔들이 이번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 자본과 방위 산업체들이 얽힌 이 권력의 구조 속에서, 전쟁은 평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본을 증식하고 권력을 확대하는 고도로 설계된 비즈니스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쉰들러는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어 생명을 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유대 자본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어 파괴적인 무기를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리스트는 사라지고 이제는 죽여야 할 명단을 작성하고 그 효율성을 따지는 차가운 계산기만 남았습니다.
유대인 학살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전 세계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들의 문화적 영향력과 자본력이, 이제는 전쟁의 참상을 가리고 여론을 호도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미화될 수 없습니다. 특히 과거의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타인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 행위는 인류사에 기록될 또 다른 범죄일 뿐입니다. 이제 광기를 멈추고 자신들이 전 세계에 호소했던 그 인본주의의 가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더 이상 비명이 아니라 진정한 화해의 노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쉰들러가 남긴 마지막 눈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는데"라는 그 후회 섞인 고백이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준엄한 심판의 목소리로 들리길 바랍니다.
이 음악이 이 희대의 폭군들 광기를 진정시켜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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