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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05.08

농촌별곡

오동꽃 필 무렵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5.08 14:56 조회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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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봄날이 가고 있다. 흐드러졌던 봄꽃 잔치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고, 여름을 재촉하는 풀꽃들이 하나 둘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꽃이 진 나뭇가지에 돋아난 잎새는 나날이 짙푸르러 간다. 그 와중에 이제야 꽃을 매다는 나무도 있다.

아까시 꽃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고, 오동꽃은 아마 낯설 게 틀림없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은 귀에 익었을 테지만 오동꽃이라니. 모양새는 참깨꽃을 닮았지만 연보랏빛을 띤다. 요 며칠 뒷산 오솔길을 걷노라니 어른 엄지 크기의 오동꽃잎이 흩뿌려져 있다.

그 꽃이 질 때엔 아마도 ‘후두두둑’ 소리가 났으리라.

몇 해 전 산불이 휩쓸고 간 앞산과 뒷산에는 그 사이 이런저런 나무가 자생하여 쑥쑥 올라왔다. 이맘때가 되면 그 산허리에 연보랏빛 꽃무리가 점점이 피어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바로 오동꽃. 그게 오월 초순이니 이때를 나름 ‘오동꽃 필 무렵’이라 일컫기로 했다.

오동꽃 필 무렵 산야의 수목은 연두빛에서 한결 짙푸름을 더하게 된다. 먼발치로 보이는 산줄기는 다채로운 색감으로 눈이 부시다. 연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아닐까 싶다. 숲길을 지나노라면 그 넘치는 생명력에 숨이 막히고 수풀이 뿜어내는 풋풋한 향에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그러니 봄날이 가기 전에 이 봄을 맘껏 누려보자 해서 벗들과 함께 훌쩍 길을 나선다. 아마도 마지막 봄나들이가 되겠지. 익산 미륵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꼭대기에 오르면 드넓은 호남평야가 사방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드넓은 시계 속에 펼쳐진 지형은 흐릿하게 뭉개져 계절을 종잡을 수 없다. 산허리에 자리한 사자암의 전설과 산자락에 펼쳐진 미륵사터는 이 고장이 백제의 옛터전임을 일러준다.

봄기운은 이국적 풍경을 잘 가꿔놓은 시골 정원에서 물씬 풍긴다. 하늘 끝까지 치솟은 메타스콰이어 숲이 상징하듯 50년의 연륜을 담고 있는 이 정원은 몇 해 전 세상에 공개됐다. 그 인위적 미학이 못내 거슬리지만 바로 거기에 봄이 서려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한편 오동꽃 필 무렵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오동꽃 필 무렵이면 벼농사가 시작되는 탓이다.

‘마지막 봄나들이’ 며칠 전, 벼농사 초반공정이라 할 ‘모농사’에 들어갔다. 볍씨를 담가 모판에 넣고, 못자리를 만드는 한 주일 남짓 걸리는 일이다. 이는 늘 그래왔듯 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태 전 벼두레 공동경작 면적이 급격히 늘면서 작업인력을 감당키 어려워졌었다. 고육지책으로 내가 짓는 면적을 떼어 지난해부터 고산농협의 ‘유기농 포트모 대행작업’으로 돌렸더랬다. 덕분에 인력난에 시달리던 벼두레 공동작업에 숨통이 트였고 일련의 작업은 한결 여유 있게 진행될 수 있게 됐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 결과로 경작체계는 따로 나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나로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고, 벼두레 또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여전히 벼두레의 일원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올해도 일련의 공동작업에 함께했다.

오동꽃을 피우는 마음이랄까. 전통사회에서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고, 그 딸이 자라 시집갈 나이가 되면 장롱을 짰다고 한다. 그러니 그 오동나무를 오죽 애지중지 키웠을까.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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