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自己紹介 바닥 씨가 완주로 온 까닭 농부는 점점 바빠진다 . 나는 여전하다 . 시골에 내려와 산다고 하면 농사는 안 지어도 마을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렁더울렁 지낼 거라 넘겨짚는 도시 사람이 있는데 나는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고 큰길가 아파트에 산다 .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고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아쉬운 평범한 월급쟁이다 . 아파트 주민답게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 분양 받은 다섯 평 밭에 모종만 심어놓고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텃밭농부도 못 된다 . 도시 생활과 다를 게 없다고 ?
베란다 앞에는 논이 , 현관문 앞에는 보리밭이 보이고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린다 . 요즘은 해질녘부터 밤새 개구리가 운다 . 걷거나 자전거로 강둑을 따라 출퇴근하고 야근은 손에 꼽는다 . 많은 날들이 여유롭고 무난하다 . 축복받은 풍경 안에 산다 . 그래서 어떠냐고 ?
너무 무탈해서 무료할 때도 있다고 대답하련다 . 가까운 곳에 어울릴 친구가 없고 , 퇴근 후 놀러갈 데도 없다 . 있다 해도 차가 없어서 다니기 어렵다 . 그렇다면 나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걸까 ? 마냥 좋고 행복하던 시간이 지나니 외롭고 심심해서 지금은 그만그만하다 .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생활은 평화롭고 아늑한 한편 서럽고 답답해하기도 하니까 . 마음은 흐르고 변하는 게 당연하니 이유를 찾거나 해결하려고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을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 완주행보는 새로운 삶터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
즐겁거나 놀랍거나 특별한 것들에 더해 오르락내리락 하는 마음상태까지 포함해 솔직하고 일상적인 오늘도 기록하려고 한다 . 시골살이를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성공과 실패 사례처럼 현재진행형인 고군분투를 골고루 들려줄 수 있도록 . 사실 나는 성급한 사람이다 .
이전에도 직장생활을 잘 견디지 못해 짧게는 몇 달 , 겨우겨우 버텨서 1 년 , 길어야 2 년 정도 다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곤 했다 . 이직과 퇴직 , 구직과 사직을 반복하느라 이력서를 지저분하게 만들면서 언제나 신입사원 .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 작정하고 백수로 살기도 했다 . 돈도 기술도 없었지만 급한 성격 덕에 몸과 마음을 바삐 움직이다 보면 기적처럼 좋은 기회들을 만났다 .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
벌어놓은 돈을 최대한 아껴썼고 중간중간 감당할 수 있는 돈벌이를 했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먹고 자면서 청소하고 , 바닷가에서 커피를 팔았다 . 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행사장에 초대되어 커피도 팔고 노래도 했다 . 아이도 보고 , 고양이도 , 자기소개서도 , 빈집도 봐줬다 .
500 원짜리 책도 만들어 팔았다 . 일거리를 줄 수 없으면 그냥 후원금이라도 달라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돈도 받았다 . 월급쟁이나 자영업자가 아니더라도 대안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렇게 4 년여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
한 직장에서 그만큼 있어본 적이 없으니 백수를 가장 오래한 셈인데 아무리 적성에 맞는다 해도 돈을 벌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 나에겐 세 가지가 필요했다 . 지속적인 수입이나 경제력 , 재미를 느끼는 일 , 함께 놀 친구 .
‘ 비규정직 대안직업생활인 ’ 으로 각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재미있게 살 수는 있었지만 돈에 대한 불안을 해결할 수 없었다 . 처음에는 500 만원을 다 쓸 때까지만 놀 생각이었다 . 3 년차 때 적금을 깨 300 만원을 더 썼다 . 4 년차가 되자 더 이상 백수로 살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
통장잔고가 줄어가는 걸 보면서 전전긍긍 돈걱정을 하고 있을 때 완주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오랜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 돈을 벌 수 있고 , 친구가 있고 , 처음하는 시골살이에 호기심이 생겼으니 생활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도 충족되는 편이었다 . 다행히도 생각보다 오래 그럭저럭 다니고 있다 .
연고도 없는 곳에 좋아하는 친구 한 명만 보고 오겠다는 결정은 성급하게 내렸으나 이 생활을 정리하겠다는 결정은 전처럼 성급하게 내리기 어렵다 . 집을 구해 냉장고와 세탁기를 들이고 ,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 장을 보고 살림을 오롯이 챙기며 살게 되니 전혀 몰랐던 생활인의 세계가 보인다 .
보통의 하루를 위해 묵직한 매일을 , 먹먹한 매순간을 지나야 한다는 것 . 독립생활자로 살면서 늦게나마 철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도시에서도 독립생활자로 살았더라면 완주살이와 비교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아쉽고 , 처음 완주에 살기시작할 때의 기쁨과 설렘은 건너뛰고 그저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해서 아쉽다 . 아쉬우니까 그만큼 더 생생하게 느끼고 깊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기록하겠다 .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