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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3.09.25

농촌별곡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3.09.25 09:31 조회 4,2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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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잔치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잔치는 끝났다 . 비봉 돼지농장 완전해결 축하잔지 .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3 백 명을 웃도는 주민과 손님이 실내 게이트볼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

비봉면 풍물패가 흥겨운 가락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고 ,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고 소회를 나누는 간략한 의식에 이어 잔치음식을 나눴다 . 두어 시간의 짧은 마당이었지만 준비하는 데는 십 수명이 꼬박 한 달을 매달려야 했다 . 덕분에 별다른 말썽 없이 뜨거운 분위기에서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

무엇보다 < 계란으로 바위를 깨다 > 를 표제를 단 경과보고서를 발간해 돼지농장 재가동을 막아낸 그 지난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뿌듯하다 . 이리하여 이지반사 ( 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 ) 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이 자리를 빌어 이 큰 잔치를 준비하느라 애써준 이지반사 집행위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이들이야말로 8 년에 걸친 기나긴 싸움의 실질적 주인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 아무튼 싸움에서 이기고 잔치도 끝났으니 나 또한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

내 본연의 자리란 다름 아닌 농사꾼 , 쌀 전업농이다 .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 잔치판에 넋이 나가 있다가 돌아와 보니 논배미가 확 달라져 있다 . 그 사이 벼 이삭이 패고 가루받이를 거쳐 어느새 살짝 고래를 숙이고 있다 . 작황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 참 다행이다 .

그런데 뭔가 어수선하다 . 그 사이 벼포기도 쑥쑥 자랐지만 옆 자리의 풀도 거침없이 몸피를 키운 것이다 . 게다가 기후변화 탓에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고 기온이 높았던 탓에 논둑은 마치 정글이라도 되는 양 잔뜩 우거져 있다 . 사람이 지나 다닐 수 없을 지경이다 .

허겁지겁 예초기를 둘러 매고 쳐내고 있다 . 풀대가 굵고 질겨서 예초기 칼날이 잘 먹히지 않아 힘이 곱절로 든다 . 더욱이 늦더위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금세 힘이 패이고 두 어 시간 기계를 돌리고 기진맥진 , 곤죽이 된 몸을 추슬러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

그나마 이것이 한 해 농사의 마지막 고비라는 걸 위안 삼아 버텨낸다고 할까 . 그렇다 . 벼이삭이 갈수록 고개를 깊이 숙이고 나락이 여물면 한 달 남짓 뒤 가을걷이를 하게 된다 . 결실의 계절 , 수확의 기쁨 따위로 일컬어지는 참 풍성한 시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순 없을 것이니 이 늦더위도 머잖아 물러가고 선선해질 것이다 . 그러니 놀기에도 딱 좋은 시절 . 노는 일에 벼농사두레가 빠질 수 없지 . 안 그래도 이번 주말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신호로 ‘ 가을의 여정 ’ 이 시작된다 .

완주미디어센터 주최로 읍면 단위를 순회하는 ‘ 품앗이 상영회 ’ 가 그것 . 고산면의 경우 올해는 벼농사두레가 주관 단체로 선정돼 9 월 15 일 오후 7 시 미디어센터에서 < 우수 > 를 상영한다 .

그 뒤를 이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 탓에 3 년을 거른 ‘ 황금들녘 풍년잔치 ’ 가 펼쳐진다 . 나락이 익어가는 논배미에서 메뚜기 잡고 , 10 월초의 저녁 한때를 흥겹게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이어 갓 수확한 쌀로 지은 햅쌀밥을 함께 맛보는 햅쌀밥잔치 , 누군가 벙개를 치면 느닷없이 만들어지는 또 다른 자리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 ‘ 벼두레컵 당구대회 ’ 같은 이벤트가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 큰 잔치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이렇듯 또 잔치판이 기다리고 있다 . 이게 행복일까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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