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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구? 상관사는 아줌마들!2014-09-03

우리가 누구? 상관사는 아줌마들!

우리가 누구? 상관사는 아줌마들!
영화 한 편 근~사하게 찍었지요
그게 진짜 재미있더구만요
근데 나중에는 영화보다 사람이 더 좋아집디다

 

완주군 주민시네마스쿨

 

모든 일은 봄에 시작됐다
지금은 아무리 얇은 옷을 입어도 땀이 흐르는 삼복더위 속에 있지만 그땐 가벼운 점퍼나 남방을 하나씩 걸쳐 입고 있었다. 상관 주민자치센터 2층 복도 끝방에서의 첫 만남은 어색하면서 살벌했다. 상관아줌마 9인과의 첫 만남.

 

사람은 살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태풍을 여러 번 만나게 된다. 대학입시, 연인과의 헤어짐, 아홉수, 크고 작은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지만 결혼과 출산이야말로 큰 태풍이 아닐까.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한 이들과의 만남은 풍부하지만 피곤하기도 하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태풍을 여러 번 겪은 이들은 다시 흔들리기 싫어서 외부의 자극에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 또한 고집이 세다는 것. 특히 중년의 아저씨들!

 

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상관 아줌마들의 기에 눌린 것은 사실이다.
자! 각설하고 기센 아줌마들과의 첫 만남 이후, 카메라 들고 고군분투한 모험담을 늘어놔야겠다.

 

우리의 이야기가 과연 영화가 될까

 

“전혀 감이 없어요.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아이 낳고 키우다보니 뒤돌아서면 잊어버려요. 주차해놓고 다음날 어디에 주차했는지 찾으러 다니고 손에 핸드폰 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 찾는다고 집안을 다 뒤지고 건망증이 날로 심해지죠.”

 

영화를 찍겠다고 모였는데 뭘 해야 할지 다들 막막했다. 아이 낳고 키우느라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진 느낌이고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영화처럼 로맨틱하거나 드라마틱한 순간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처럼 내 자신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엄마들의 마음.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아이들 유치원, 학교 보내놓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집안일을 정리하고 주민자치센터로 나와 15번의 수다모임을 함께 했다. 비록 영화 같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 흉보기부터 아이 키우는 일, 결혼 전에 하던 일들, 완주 상관으로 이주하게 된 이야기, 현재 하고 있는 일들, 특정한 주제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번 물길이 트이니 수다는 차고 넘치고, 주변 일들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목요일 모임 이후에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사용해 너무 평범해서 지나칠 법한 일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듯 멀었던 우리 사이

 

주민시네마스쿨을 진행하며 놀랐던 사실은 참여자들이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데 이들 서로가 이웃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서로 가볍게 인사만 하는 사이였거나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나는 이들도 있었다.

 

“작년 11월에 상관 신리로 이사 왔어요. 남편직장 따라 무작정 전라도라는 지역에 처음 왔죠.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집에 있었던 때가 많았죠. 여러 가지로 낯설었으니까.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도 어렵고, 어울리려는 시도를 안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신리로 이사 왔는데 여기는 시골 같지도 않고 도시 같지도 않고, 애매모호 했죠. 저도 작년에 이사 왔는데 이미 형성되어 있는 소그룹 안에 끼어드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내가 마음을 열면 된다고는 하는데 그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완주군 상관면 신리는 묘한 곳이다. 상관면 골짜기 마다 오래전부터 형성된 시골마을들이 있고 대부분 그곳에서 평생 살아온 어르신들이 여전히 터를 지키고 살고 있다.

 

반면 상관 신리는 지큐빌아파트를 거점으로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아파트의 구조적 특성상 이웃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는 것이 어렵고, 살고 있는 지역을 둘러보고 읽어 낼 수 있는 과정이 많지 않다.

 

이주한지 오래된 주민들은 스스로 바느질모임이나 독서모임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지만 새롭게 이주한 이들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시네마스쿨 프로그램 참여자 대부분은 영상 한편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이웃사람을 알게 된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촬영한다고 집 앞 기찻길 위를 지나는 육교를 처음 올라와 봤어요. 맨날 집에서만 기차소리를 듣다가 막상 올라와서 기차 지나가는 것을 보는데 내가 너무 갇혀 지냈구나. 내가 하나하나 더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작년에 이사 와서 이 과정을 추천해주셔서 이곳에 들어왔는데 사람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이 안에서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게 가장 감사해요. 매주 일주일에 한번 씩 왔던 것들이 조금씩 기대가 되었어요. 좋으신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얼굴은 알지만 서로 데면데면했던 사이에서 이제는 서로의 집을 드나들고 각자 반찬을 준비해 양푼에 밥 비벼먹는 사이가 됐다. 이게 영화지 영화 별 거 있나.

 

엄마 뭐해? 엄마 지금 영화 찍고 있어

 

7월 31일. 완주주민시네마스쿨 수료식이 있었다. 상관 아줌마들은 자신의 아이들, 혹은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늘 부대끼며 한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지난 봄 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떠들고 촬영한 영화를 선보였다.

 

남편들은 아내의 작품을 본 뒤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맨 날 목요일마다 어디를 가나 했는데 이런 일을 했군요. 아내가 우울한 것 같았는데 요즘 얼굴이 좀 밝더라구요. 소소하지만 이것이 다 삶이잖아요. 각색되지 않은 한 편의 수필. 평범하지만 사소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아이들 방학이 끝날 때쯤 선선한 가을이 오면 상관아줌마들은 또 다른 영화 만들기에 도전한다. 이들이 만든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완두콩 홈페이지(www.wandookong.kr)를 찾아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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