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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꽃이 핀다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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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이 만난 풍경]

 

2012년과 2013년의 경계. 모두들 연말을 어떻게 보냈을까.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은 축 쳐진 어깨를 하고 송년회한다고 모이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과음을 하진 않았다. 그저 자주 한숨을 쉬곤 했다. 무거운 공기가 맴돌았지만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서로 의지하자는, 평소 같았으면 닭살 돋는다며 핀잔을 줬을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의 경계에는 많은 눈과 추위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달은 535버스를 탈 일이 많지 않아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할 까 고민이 많았다. 일단 창밖의 풍경이라도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며칠 전 535버스를 타고 고산으로 향했다. 추위가 약간 수그러든 날이었고 버스창가로 들어오는 오후 햇볕은 어찌나 나른한지 버스 안에서 숙면을 취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봉동을 지날 때 쯤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들어 슬며시 눈을 떴더니 내 옆에는 언제 와서 앉았는지 모를 젊은 아가씨가 내 어깨에 기대 졸고 있었고 난 그 아가씨의 머리에 내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었다. 편안하게 잤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잠이 슬쩍 깬 뒤로도 어깨를 빼지 않고 종점인 고산까지 갔다. 잠에서 깬 아가씨는 너무 친근하게 기대어 자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내렸다. 물론 나는 그때서야 잠을 깬 연기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서로 몸을 기대 편안하게 잠든 30분 동안 난 오랜 친구와 버스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535버스를 타고 고산을 향하는 길에는 대부분 고산지역 어르신들이 많다. 방학 철에는 고산휴향림으로 MT가는 대학생들이 그득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르신이 많이 타셔서 등하교시간 외의 시간에는 나같이 어중간한 나이의 사람은 단연 눈에 띈다. 그래서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버스를 타면 나 역시도 유심히 그 사람을 관찰하곤 했다.
나와 같이 숙면을 취하고 고산에 내린 아가씨는 무슨 일로 이곳에 왔을까.. 물론 집이 그 근처 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있을 법한 사연을 상상해 보는 거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완주, 고산과 연결된 일을 하고 있었다.
고산을 오가며 어르신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슨 일을 하냐.’ , ‘도시에서 짝 찾기도 어려운데 젊은 사람 없는 여기는 왜 왔냐.’ 등 대부분이 혼기가 지난 거 같은데 시골로 내려온 걸 안쓰러워하시고 이 시골에는 일이 없다며(물론 남자도 없다며), 오히려 내 부모님보다 더 나의 앞일을 걱정하시는 듯 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는 도시의 삶이 싫증나 도피하듯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세상을 바꿀 대단한 꿈은 아니지만 저마다의 크고 작은 우주가 고산에 있다. 그들의 우주는 왜 이 변두리로 향하는 것일까. 서울중심적인 인식으로 ‘변두리’라는 말이 왠지 소외받고 사람이 살지 않는 쓸쓸한 곳을 떠올리게 하지만 난 ‘변두리’라는 말이 좋다. 변두리는 한가하며 그만큼 재미있는 일을 생각할 수도 있고 그곳은 곧 경계다. 자 여기서 다 같이 큰 소리로 읽어보자.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그 경계에서 놀면서 일하고 꽃을 피우고 싶다.


농촌스러운 디자인을 해보겠다며 서울서 직장생활 잘 하다가 흘러흘러 완주 고산까지 온 권혜진. 그녀는 기계적인 일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과 소통하는 촌(村)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집 앞 텃밭의 풀들과 대화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최숙. 그녀 또한 아름다운 텃밭을 위해 홍길동처럼 동해 번쩍 서해 번쩍이다. 햇빛처럼 훤한 청년 이재승. 그는 태양광을 모아 에너지를 만드는 협동조합을 진행 중이다. 빵 굽는 남자 국태봉. 지리산 근처 어디쯤에 있는 제과점 이름 같지만 국태봉씨는 고산향 교육공동체 ‘이웃 린’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며 배우며 일상을 즐겁게 보내는 듯 하다. 고산산촌유학센터에서 애들과 함께 뛰어노는 김다솜. 평생 돈은 안 벌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했지만 이런 친구들이 나중에 떼돈 벌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여튼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위를 밝게 하는 그녀. 그리고 완주CB센터의 젊은 피 함효현, 임은진, 변세광. 이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사무실에서 숨겨놓은 매력이 폭발하고야 만다.


소개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더 많다. 나의 미약한 사회생활 때문에 이렇게 몇 사람만 소개함을 용서하시라. 우리는 매일 만나 대화를 하고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서로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미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직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쑥 잡아 빼면 우루루 딸려 나오는 감자같이 아직 땅 속에서 크고 있는 이들도 있고 이미 큰 감자가 되어 밖으로 나온 이들도 있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 만나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올 한해가 기대된다.
글을 쓰다 보니 약간 방관자적 입장이 된 듯 하다. 나 역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다. 
/프리랜서로 영상제작일을 하고 있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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