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이 만난 풍경]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한국의 남배우를 꼽아보라 한다면 난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남배우가 있다. 물론 그때그때 흥행했던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온 배우들이 있긴 하지만 (아저씨의 원빈 잠깐, 시크릿 가든의 현빈 잠깐) 하얀국물라면이 아주 잠깐 상승세를 탔다가 다시 빨간국물라면으로 되돌아왔듯이 라면하면 신라면, 남배우하면 류승룡 아니겠는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순수한 수컷 같아서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나는 수컷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약간은 늙어 힘이 빠져 보이지만 눈빛은 살아있는 남자 배우가 좋다. 요즘 남자 배우들은 허구한날 하는 일이 몸 관리인지, 근육들은 하나같이 그림 같다만, 그냥 거기까지다.

 

기왕 남자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의 작가)의 ‘남자 표본에 관한 연구’라는 짧은 에세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나도 그녀 못지않게 남자를 찬양하는 것에는 남에게 뒤지지 않은 터라 그녀의 소소하고 솔직한 글들을 흥미롭게 읽어왔었다.

우선 그녀의 글을 인용하여 남자라는 존재를 멋부리는 것을 기준으로 분류해 보자.

1. 한눈에 멋쟁이로 보이는 남자
2. 멋쟁이로 보이지 않으나 실은 멋부리는 남자
   ①다른 사람들과 같아서는 싫은 남자  ②다른 사람들과 같아도 좋은 남자
3. 귀찮은 것이 싫어서 멋부리지 않는 남자
4. 천연기념물 

 

먼저 첫 번째 한눈에 멋쟁이로 볼 수 있는 남자는 과시욕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 과시 방법은 실로 솔직하고 굴절이 적다. 쉽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남자란 여자들이 다루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번째, 세 번째 부류에 대해서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라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 네 번째, 천연기념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런 종류의 남자는 자기 일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있다. 직업을 통해서 자신의 과시욕을 충족시킬 줄 아는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멋을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난 이런 종류

의 남자들을 몇 주 전 겨울비가 처절하게 내리던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 운동장에서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2월 1일을 시작으로 3일 동안 ‘나는 난로다’라는 고효율 화목난로 공모전이 열렸었다. 비가 내려 운동장이 갯벌이 되어도 난로주인들은 불평 없이 묵묵히 난로를 설치하고 장작으로 불을 만들었다. 비가 내려 심난하던 운동장은 그들의 난로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금방 훈훈해졌다.

 

그들은 수행하는 고행자 같기도 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 같기도 했다. 이상하게 보이는가 싶다가도 자세히 관찰하면 멋스럽고 백두산 어디쯤에 살고 있는 호랑이 같기도 했다. 그들의 겉모습보다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몸에 흙 안 묻히고 험한 일 안하는 사무직을 선호한다. 깔끔한 와이셔츠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기획서를 쓰고 전화 몇 통화로 골치 아픈 일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도 그들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여자보다 예쁜 남배우보다는 기왕이면 수컷냄새 물씬 나는 거친 남자 류승룡이 좋고 사무직 종사자보다는 현장에서 날뛰는 남자, 장작패고 집도 짓고 난로도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남자가 더 매력적이다 이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천연기념물같은 난로 만드는 이들이 완주에도 더욱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 중에 멋진 이가 있다면 고구마 한 박스 가지고 가서 같이 구워먹자고 할테다.

/프리랜서로 영상제작일을 하고 있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