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버스를 타고 고산으로 간다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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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와 고산을 연결하는 유일한 버스가 있다. 15분 혹은 30분에 한 대씩 지나다니는 귀한 버스다. 나에게 '고산'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단연 535번 버스다.
물론 지금은 535번 버스 전문가가 되어 누군가가 고산가는 버스가 언제 오냐고 초조하게 물어보면 순간 버스안내양이 되어 친절히 안내해 줄 정도이다.
고산가는 길이 익숙해지면서 지금은 버스 타는 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버스타고 가는 1시간동안은 창밖을 바라보며 완주의 풍경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온전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생각의 대부분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이지만 말이다.
대안적인 삶, 천천히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동경하여 찾게 된 곳이 퍼머컬쳐대학이다.
완주 고산에 가서 일 년 동안 이 학교에 다닌다고 했을 때 우리 어머니 말씀 '시집도 안 간 노처녀가 뭐한다고 시골에 가냐. 학교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학교, 고등학교 때 안 한 공부 이제 하냐...(이하 생략ㅡㅡ;) '
아, 전쟁 같았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지난 12월 10일이 졸업식이었다. 퍼머컬쳐대학을 농업직업학교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식, 기술, 공부라는 것을 초월해 나라는 사람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었다. 내가 왜 흘러 흘러 이곳 완주 퍼머컬쳐대학이라는 곳까지 왔는가. 그 과정에서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누구이고, 영향을 받았던 책은 어떤 책이며, 가장 슬펐던 기억, 기뻤던 기억,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퍼머컬쳐대학 수업을 받기 위해 올라탄 535번 버스는 마치 타임머신 같이 과거로 향했다. 내 감정을 촘촘하고 내밀하게 표현했던 중고등학교 때부터 멋진 여성 영화감독을 꿈꾸며 밤 낮 없이 영화를 만들던 대학시절,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한다며 너무 들떠서 돌아다닌 나머지 후회도 많이 했던 이십대 후반시절까지..
봄이 되어 농사를 시작할 때 겨우 내 꽁꽁 얼었던 땅을 갈아서 다시 돋우듯이 지난 일 년 동안 내 인생의 조각들을 모아서 이렇게도 맞춰보고 저렇게도 맞춰보는 변주의 시간이었다.
퍼머컬쳐대학은 나에게 좋은 거름이었다. 나는 제법 좋은 땅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졸업이다. 그래도 535번 버스를 타고 고산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