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시골 할머니의 김장은 기도와 같다2013-01-22

  • 첨부파일
  •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완주댁의 시골살이 3]시골 할머니의 김장은 기도와 같다

 

올 겨울은 무척 춥다. 며칠 눈도 참 많이 내렸다. 겨울을 한껏 느끼는 것 같아 좋다.
도시라면 곳곳에 트리장식이나 캐롤, 구세군 남비 종소리 같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들로 연말임을 느꼈을 것 같다. 여기는 참 다르다. 수북히 쌓인 배추와 김장 준비에 분주한 아주머니들, 집 한켠에 쌓인 장작과 지붕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겨울을 느낀다.


농촌은 겨울과 새로운 내년을 준비한다. 나무를 떼는 집은 미리부터 장작을 준비하고, 한해 김치를 마련하기 위해 김장을 준비한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이후 김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큰 식당을 지날 때나 간혹 매체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행사에서나 김장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니 우리세대는 김장이란 행사가 겨울을 대비하는 한해를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첫 눈이 온다’는 소설(小雪, 11월 22일),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 김장을 담근다. 긴긴 겨울의 첫 맛이를 김장과 함께 시작한다. 최근 국가기록원의 김장문화의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1980년대 기록에서는 핵가족화 등으로 점차 김장 담그는 집이 줄어드는 반면, 김치를 산업화하여 공장에서 담그는 모습, 배추ㆍ무 특별요리 강습회 등 소비를 늘리기 위한 운동이 펼쳐지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김장문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세대와 다음세대에게는 김장도 아주 이색적인 체험행사가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런가?


여기 온 첫해에 나는 김장행사(?)에 초대되었다. 함께 일하던 선생님이 김장을 한다며 놀러오라는 것이었다. 이집 김치가 맛있는 터라 좀 도와주고 얻어먹을 마음도 있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맏며느리인 선생님은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김장행사로 월차를 낼 정도다. 선생님의 가족 뿐 아니라 4남매가 다 모여서 한다고 하니 사실은 궁금한 마음도 있고 처음 경험해 보는 김장이라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고춧가루가 묻어도 좋을 만한 옷가지에 머리수건과 빨간 고무장갑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 집을 찾아갔다. 처음 가는 길이라 두리번거리는데 한 집 마당에 큰 고무통 여러개에 절인 배추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바로 그 집이었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1접이 100포기라는 것을. 올해는 배추 수확량이 줄어 4접을 한다고 했었는데, 400포기였던 것이다. 나는 김장의 백미, 사실 제일 쉬운 작업인 머무리는 작업에 투입됐다. 나는 멋도 모르고 선생님 시어머님 옆에 앉았다. 아주 작고 외소한 할머니 옆에. 그런데 그 빠른 손놀림이며 4시간이 넘게 자리 한번 옮기시지 않고 재빨리 하얀 배추를 빨갛게 그리고 동그랗게 말아 통에 넣으셨다. 그 옆에 앉은 젊은 나는 1시간이 지나자 벌써부터 다리가 저리고 팔이 뻐근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어머님 옆에서 게으름을 피울 수 없어 나도 꼬박 4시간을 옆에 앉아 머무렸다. 수다라도 떨고 중간에 수육을 삶아 머무린 김치와 싸먹는 재미라도 없었으면 나를 초대한 선생님을 원망할 뻔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장을 위해 어머님은 한해 내내 준비하신다고 했다. 김장에 들어가는 배추며 각종 재료들 농사를 짓고, 고추는 좋은 놈으로 사서 말리고 빻고. 심지어 배추는 약하나 안하고 매일 아침마다 배추벌레를 젓가락으로 잡으셨다고 한다. 각종 유기농 재료에 할머니 손맛까지 감동의 김치다. 한해의 먹거리를 정성스레 준비하면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를 맞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어머님의 김장행사는 기도와 같은 것이었다.


올 겨울에는 중요한 선거가 있다. 이 선거야 말고 그간의 불평등, 불균형, 불합리를 깨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다. 이번 선거는 내년 아니 그 이후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기원하는 김장행사와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올 겨울을 가장 잘 나는 비법은 이 선거에 달려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나는 투표하러 간다.

 

/이영미 완주 커뮤니티 비즈니스센터 팀장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농촌의 빈집과 노는 땅, 진짜 주인은 누구?
다음글
따뜻한 집을 짓고 싶어요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