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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농사, 살림, 배움 3관왕 구자예-조성희 부부2024-04-18

[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농사, 살림, 배움 3관왕 구자예-조성희 부부

[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농사, 살림, 배움 3관왕 구자예-조성희 부부

[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농사, 살림, 배움 3관왕 구자예-조성희 부부


"남편 돌보려고 칠순 넘어 자격증도 땄지"



짝 열린 대문 앞에서 만난 구자예 어르신은 곧 심을 생강 종자를 손질하려던 참이었다. 파란 통을 엎으니 쌉싸름하지만 향긋한 냄새와 함께 토종생강이 우르르 쏟아진다.

자예 어르신이 생강을 마디마다 적당한 크기로 똑똑 분지르며 우리는 예전부터 우리가 먹으려고 직접 키웠다. 옛날만큼 많이 하진 않는데 그래도 농사가 잘 지어서 좀 남으면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산면 양야리에서 22살에 이곳으로 시집온 자예 어르신은 그간 농사와 살림,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특히 30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94살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치매를 앓는 바람에 고생했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 6개를 싸서 자식들 손에 쥐여주고 등교시키고 나면 아침 먹고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갔다. 바삐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집에 들러 시어머니가 잘 계시는지 챙겨드리고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자식들이 집에 올 시간이다. 모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도시락통을 씻어서 정리하고 10시나 돼야 잠들었다.

자예 어르신은 오히려 그때는 젊어서 힘든지도 모르고 살았다지금은 애들도 다 크고 나가서 편하게 사는 것 같긴 한데 나이가 들어서 힘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된 일상 속 어르신의 기쁨은 자식들이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김치참치볶음과 계란후라이, 직접 구워서 기름 바른 김이면 자식들이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고 한다.

그땐 애들이 한참 클 때라 집에만 오면 배고프다고 해서 간식도 만들어주고. 날 궂어서 밭일 못 할 때 직접 재료 사서 팥죽이랑 짜장면도 만들어줬지. 애들이 요즘 그 생각이 나는지 그때 먹었던 음식이 가끔 생각난다고 하네.”

구자예 어르신은 1년 전쯤 가정보호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한 남편을 돌보기 위해서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공부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그만둘까 고민하던 어르신은 학원 원장의 말에 결심했다고 한다.

원장이 학원에서 내가 제일 나이 많다고, 자부심 느끼고 하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자부심 품고 다녔어.”

첫 시험에서 맞닥뜨린 컴퓨터 시험방식 때문에 자예 어르신은 무척 당황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본 첫 시험은 시간이 부족해서 떨어졌지만, 두 번째 시험은 넉넉히 남는 점수로 붙었다.

학원에 컴퓨터 한 대 있길래 쉬는 시간에 한 번씩 연습해서 결국 땄어. 그러니까 기분이 얼마나 좋대. 시험 보러 가기 전날까지 핸드폰으로 문제 푸는 영상만 여러 번 봤지. 딸들이 엄마 대단하다고 하더라.”

자예 어르신은 요즘 예전과 결이 다른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일 친구들이랑 만나서 봉동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나들이 가기로 했어. 날마다 교회 다녀야지, 농사해야지, 이렇게 한 번씩 밖으로 놀러도 다녀야지. 난 바빠서 회관은 잘 안 가.”




"결혼 후 한결같이 아내와 새벽기도"


이틀 후 다시 찾은 댁 앞에서 막 산책하고 돌아오는 성희 어르신을 만났다. 지난번에 손질하던 생강을 심었는지 궁금해하자 어제 심었다는 밭으로 안내해주겠다며 발걸음을 옮긴다.

집에서 뒷산까지 걸어가는 길에 점심은 드셨냐는 질문에 성희 어르신은 나는 맛있는 거 먹었다. 내가 몸이 시원찮아서 잘 먹이는 바람에 얼굴은 빤질빤질하고 몸이 분다며 껄껄 웃었다.

밭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허리를 굽히고 하지감자 심은 고랑을 정돈하는 자예 어르신이 보인다. 어르신은 하지감자의 무성한 잎을 솎아내고 빈 부분을 흙으로 메꾸고 있었다. 이제 몸이 불편해 같이 일하지 못하는 남편의 몫까지 자예 어르신이 모두 해낸다.

지팡이를 짚은 채 자예 어르신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성희 어르신이 이만 가보겠다며 몸을 돌리고 걸어가다 생강 심은 곳 앞에서 멈췄다. 날이 따뜻해져서 고랑 위를 덮은 마른 볏짚을 걷어내야 한다는 성희 어르신의 말에 자예 어르신이 조금 더 있다가 치울 거라고 대꾸했다.

몇 번 지금 해야 한다”, “아니다. 다음에 해도 된다며 가벼운 실랑이가 오고 간 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건 성희 어르신이다.

내가 이렇게 맨날 말 해봤자 소용없다. 직접 일하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다라고 하면서도 다음에 잘못된 거 눈으로 보고 나면 내가 맞았다고 할 거다라며 장난스레 투덜거리는 어르신의 얼굴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두 어르신은 결혼 후 지금까지 날마다 새벽기도를 함께 다닌다고 한다. 부부 금실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 자예 어르신은 뭘 좋아. 신앙생활 함께 해야 하니까 같이 가는 거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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