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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6] 할머니와 술2023-05-15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6] 할머니와 술

할머니와 술 


나의 할머니 임수녀 여사는 삼일만세가 있던 1919년에 태어났다. 살아 계신다면 올해로 104세이다. 일곱 자식을 키워내며 자식들 공부하는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다고 아들들은 총명한 어머니를 내내 자랑으로 삼았다. 집안에서는 물론이고 마을에서도 중대사를 의논드리는 어른이었고, 아침마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곱게 땋아 비녀로 쪽을 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집안의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술을 빚으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머니가 술을 빚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적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안방 아랫목에 내 키만큼 높은 항아리가 빨간 밍크 이불에 덮여 있던 장면과 그때만큼은 안방 출입을 못 하게 하던 할머니의 엄한 말이 기억날 뿐이다.


시앙쥐 마냥 안방 들랑날랑 허지 말어라잉. 문 열었다 닫었다 허믄 부정타서 못 씅게.”


철이 들어서는 나의 결혼식 날에 하객들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할머니의 술병들이 기억난다. 콜라병, 소주병, 환타병 입구를 비닐로 덮어 명주실로 꽁꽁 싸맨 술병들이 식탁마다 올려 있었는데, 정신없던 그 날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 와 그 소박한 술병들을 떠올리면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치곤 한다.


식탁마다 놓여 있던 술병들은 할머니만이 줄 수 있었던 선물이었다. 부족한 손녀딸 결혼식에 와주어 고맙다고, 잘 살라고 축복해준 고마운 그대들이니 촌로가 빚은 술 한 잔 드시고 복 받으시라는 축원이었다. 결혼식 날 맛봤던 그 술이 생각나더라는 지인들의 말로 할머니의 술맛을 짐작할 뿐이었다. 술을 빚으려면 많은 번잡한 일을 해야 하는데도 할머니의 술 빚는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술 빚기를 시작하고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었다. 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숱한 추억 속에 왜 술 빚는 모습이 없을까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과거 속으로 달려가 닫힌 기억의 방에서 억지로라도 끄집어내고 싶었다. 누룩에 비빈 고두밥을 술독에 안치는 할머니의 간결한 손놀림과 언뜻언뜻 스치는 할머니의 흐뭇한 표정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싶었다.


나는 술을 빚을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가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할머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할머니의 시간으로 들어간 듯 평화가 찾아온다. 어려서 몰랐던 할머니의 일이었다. 며느리를 여럿 두고도 술 빚는 일은 혼자 하셨다고 한다. 아마 자신의 대에서 끝낼 일이라고 결정하셨을 것이다. 그 결정은 나의 할머니만이 아니라 집에서 몰래 숨어 술을 빚어야 했던 밀주(密酒)의 시대를 겪으며 쏟아지는 신식 문물에 허망하게 밀려나던 모든 어머니의 서글픈 체념이었을 것이다. 끊어진 실을 매듭지어 잇듯 나는 술빚기를 통해 할머니의 일을 잇는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해오던 일이 이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술이 괴었나 단지를 열어보고, 잘 익었는지 한 모금 맛보고, 일가친지와 이웃에게 먹일 날을 기다려 술을 거르며 그들이 품었던 정성 어린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겨울에 빚어놓은 술독을 열어 술이 잘 익었나 맛을 보았다.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는 할머니는 철부지 손녀딸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세월이 안쓰러우신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당신이 하던 술빚는 일을 힘써 지켜간다니 대견하신가, 한 마디 툭 던지신다.

 

맘을 곱게 써야 술맛도 곱다잉. 술이 독허기만 허믄 쓰가니. 봄꽃같이 살랑살랑 고와야지 암먼.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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