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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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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배미 '가상한 뜻'과 심란한 봄 


이런 봄이 또 있었던가?

개나리, 벚꽃, 명자, 복사꽃, 배꽃... 자연의 섭리를 따라 차례로 망울을 터뜨려야 할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울안은 울긋불긋한 꽃 물결로 가득하여 그야말로 꽃 대궐을 차렸다. 느닷없이 펼쳐진 이 황홀경에 눈이 부시지만, 한편으로는 뒤죽박죽 흐트러진 개화의 질서가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앞에 가슴이 철렁한다.


아무튼 봄꽃 잔치는 보름도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 이삼

일 내리 쏟아진 빗줄기를 따라 꽃잎을 떨구었다. 바닥을 덮은 꽃잎은 바람 따라 흩날리고, 꽃잎 떠난 가지에는 연둣빛 새순이 돋았다. 봄날이 이렇듯 허망하게 흘러가도 되는 건가.


어쨌거나 꽃 지고 새순 돋으면 어쩔 수 없이 벼농사가 코앞이다. 안 그래도 지난 주말, 벼농사두레가 경작설명회를 열었다. 벼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해마다 진행하는 행사다. 벼농사에 처음 뜻을 두고 지어보겠다는 이들에게 기본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전체 농사공정을 소개하는 자리다. 농사라는 게 한 두 해 경험으로 능숙해지는 게 아니니 기왕의 경작자들도 함께 하기 마련이다.


올해도 예닐곱 명이 경작을 쉬어가기로 했고 대략 그만큼의 새내기가 경작대열에 합류했다. 농사가 시작될 때 쯤에는 다 해서 스물을 조금 넘을 것 같다. 그 가운데 벼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생계형경작자는 나 혼자다. 나머지는 내 나름대로 레저형이라 일컫는 부류.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생업이 따로 있지만 시골에 살면서 농사를 체험하는 한편 내 먹을 쌀을 손수 지어보겠다는 이들이다.


올해는 새로운 부류가 하나 늘었는데 술을 빚는 이들이다. 기업형 양조가 아닌 전통방식으로 좋은 술을 빚는 데 뜻을 두고 있다. 그러자면 좋은 원료를 확보해야 하는데, 수입쌀이나 질 낮은 가공용 쌀 대신에 좋은 쌀을 구해야 한다. 이들은 고심 끝에 유기농 벼농사를 통해 손수 깨끗하고 건강한 쌀을 지어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렇듯 이 땅 논배미에는 가상한 뜻이 펼쳐지고 있건만 벼농사를 둘러싼 환경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식단이 서구화되면서 해가 갈수록 쌀소비량이 줄고 있다. 쌀 전업농인 나로서도 그에 따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도농직거래로 지은 쌀을 처분하는데 해가 갈수록 주문이 줄고 있다. 생각다 못해 한 달 전부터 소비자들에게 쌀을 보내면서 맛있게 드시고 주변에 홍보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다고 문제가 풀릴까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게다.


안 그래도 쌀이 남아돈다고 야단이다. 그래서 쌀생산량을 줄여야 한다고, 다수확 품종을 퇴출시키고 논에는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는 방안을 정책대안이랍시고 내놓고 있다. 고산농협 앞에는 벼 재배면적 10% 감축하여 쌀값하락 막아내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실 쌀이 남아돈다는 것은 허상이다.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정부 발표로도 84.6%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쌀이 처치 곤란인 까닭은 각종 국제무역협정에 따라 해마다 의무수입물량으로 들여오는 40만 톤의 외국쌀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쌀의 판로가 막히고, 쌀값이 폭락하고, 끝내 식량주권 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린 것 아니던가. 도지는 기후변화 속에 기상이변이라도 일어나 심각한 식량위기가 닥치면 그 때는 또 어쩔 셈인지.


이런 판국에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생태농사의 기운이 고산 땅에 넘실댄다고 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심란한 것이다.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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