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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석의 완주곤동체이야기] 함께모여사는 곤충2023-03-24

[이근석의 완주곤동체이야기] 함께모여사는 곤충

[이근석의 완주곤동체이야기] 함께모여사는 곤충

팔랑나비


곤충들의 이름은 너무 쉽게 겉모습이나 행위를 보고 붙이는 것에 약간은 화가 난다. 그 곤충의 특징이나 생태, 내력 등을 고려해서 심사숙고해서 지어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것 중의 하나가 도로명 이름이다. 그 이름이 그 장소와 어떤 것과 연상될까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전문가이겠지만) 그냥 떠오르는 단어로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그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사용했던 옛 지명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팔랑나비는 이름 그대로 꽃 주위에서 팔랑거리며 꿀을 먹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팔랑나비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름 그대로 하자면 우리 생활에서도, 사회에서도 쉽게 팔랑거리는 행위? 모습?을 보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모습을 연출하게 하는 구조도 싫다. 거기에 호응하는 부류나 자기 이익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내버려 두고 그들의 말에 쉽게 자리를 내 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팔랑나비를 욕되게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고 그들을 뒷담화로 욕하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이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게 해야 내가 안전하고 보호받고 성공의 길을 걷게 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보지 않는다. 역사의식도 없다. 오로지 나만의 안위를 위해 다른 보편적인 정의를 생각하지 못한다.

최근의 3.1절 축사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누가 써 주었을까?

중앙의 모습 뿐 아니라 그런 모습은 쉽게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을 우리만 알고 느끼는 것일까?

보편적인 진리는 없고,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당당한 결정을 하고 이를 마치 주민들이, 국민들이 당연히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곳에 사는 사람이 중심이다.

팔랑나비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꽃들 주변에 산다. 누구를 해하거나 불편을 주지 않는다. 어울려 살 줄 아는 곤충이다. 그래서 곤충에게서 배움의 꼭지가 있는 것이다.


어울려 살고,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받고, 내 욕심을 채우려고 남을 어렵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부류에 따끔한 충고를 해주어 반성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하기를 바란다.


/이근석은 귀촌해서 고산 성재리 화전마을에 살고 있다. 전북의제21 사무처장을 거쳐 지금은 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으로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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