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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5] 봄볕에 누룩 법제하기 2023-03-24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5] 봄볕에 누룩 법제하기

봄볕에 누룩 법제하기 


우리 술의 세 가지 재료는 쌀, 보리, 옥수수, 조 등과 같은 곡물, , 그리고 누룩이다. 그중 누룩은 우리 술의 처음이자 끝이라 할 만큼 중요한 발효제이며, ‘()’ 또는 곡자(麯子)라고도 부른다. 쌀이야 언제든 슈퍼에만 가도 살 수 있고, 물은 끓여서 차게 식혀 사용하면 되는데 누룩은 도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나. 스마트폰 안에 모든 답이 있다. 누룩을 검색해 국내 유명한 누룩회사의 누룩을 선택해 주문하면 이삼일 내로 집 앞에 도착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견물생심이라 일단 누룩을 가지고만 있어도 언제든 술 빚기를 도전해 볼 수 있으니 혹시 술을 빚어볼까 망설이시는 분께 누룩부터 갖춰놓자고 말씀드리곤 한다.

 

무릇 술맛의 좋고 나쁨은 누룩을 잘 만드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증보산림경제(1766, 영조 42)의 기록을 보면 좋은 술을 만드는데 누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누룩 속에는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누룩곰팡이, 당을 먹고 알코올을 생성시키는 효모, 잡균의 침입을 막아주는 젖산균과 같은 발효 미생물이 증식되어 있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힘 좋은 일꾼들을 잘 키워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대기시키는 전진기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에서는 주로 밀을 거칠게 빻아 수분을 약간 주고 반죽해 틀에 넣고 단단히 디딘 후 발효시키는 떡 형태의 누룩으로 발전해 왔다. 알갱이가 큰 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전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글루텐 성분이 많아 반죽이 단단히 뭉쳐져 누룩곰팡이와 효모에게 풍부한 먹이와 안전한 집을 동시에 제공하는 매우 적합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누룩을 띄운다’, ‘발효시킨다는 것은 효모와 누룩곰팡이가 살기 좋아하는 따뜻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를 제공해 밀반죽에 안착시켜 다량으로 증식시켜 놓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자회사는 광주 송학곡자, 부산 산성누룩, 진주곡자, 상주곡자가 있는데, 밤이나 도토리 크기로 빻아 소포장 되어 있어 술 빚기에 아주 편리하다.

 

누룩을 주문해 바로 술을 빚는 것은 아니다. 누룩의 효능을 더 높이기 위해 법제를 해야 한다. 햇볕에 널어두는 일이다.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봄과 가을은 누룩을 법제하기 좋은 철이다. 채반에 종이를 깔고 누룩을 펼쳐 낮 동안에 햇볕을 쏘이고, 밤 동안에 찬 이슬을 맞게 해 험난한 생육 조건에서 적응력이 강한 미생물을 키워 안전한 알코올 발효를 이끄는 원리이다. 특히 쨍한 햇볕과 건조한 바람은 탈취와 표백작용을 일으켜 술에서 누룩곰팡이 냄새를 줄이고 술색이 밝아지게 한다. 동상면 단지마을에 사는 술 빚는 고수인 김유녀 씨의 하루는 누룩을 너는 일로 시작해 걷는 일로 끝난다. 깊은 산골짜기에 잠깐 드는 맑은 햇볕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람이야말로 김유녀 씨의 술을 빚어내는 일등공신이다.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누룩에 코를 대면 구수한 누룩 냄새에 바짝 마른 햇볕의 냄새, 방금 스쳐 간 봄바람 냄새도 묻어난다. 비 맞은 누룩은 버려야 하니 날이 흐려지면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그녀의 오래된 일과이다. 누룩 법제에 들이는 공력만큼이나 김유녀 씨의 술맛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한 줌의 깨가 무성한 깨밭을 이루듯 한 되의 누룩은 항아리에 가득한 쌀밥을 술로 만드는 묘약이다. 춘분을 지나는 봄볕과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쏟아지니 누룩을 채반에 펼쳐 널어보면 성급한 사람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듯 벌써 술향기에 취할지도 모르겠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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