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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연의 시골생활 이야기 33] 자연스러움에 대하여2023-03-24

[신미연의 시골생활 이야기 33]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3월이 시작되기 전 창고방 대청소를 했다. 1년 이내에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은 지역에서 나눔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추려놓았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씨앗도 한곳에 모아 정리하는데만 꼬박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그러고는 파종하기 위해 월별로 차곡차곡 모아 봉투에 넣어놓고 씨앗 심는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경칩이 되자 개구리가 벌떡 일어나듯이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아하~ 이제 알겠다! 내 몸은 내가 일부러 움직이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이는구나!’ 텃밭농 5년차가 되니 자연의 흐름뿐만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의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 있을 땐 몰랐다. 밝고 활발한 봄의 기운을 타고났어도 빌딩숲에 가로막혀 자연의 파장을 느끼지 못하고 회색빛으로 가득한 도시처럼 무감각하게 살던 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환경이 내 삶을 좌우할 정도로 자유 의지보다는 자연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경천에는 여기저기 복수초가 만개해 반려견 둥글이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면 매화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팽창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디 매화뿐이랴. 만물이 겨울잠을 깨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며 세상에 고개를 내밀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자연스러움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광고나 마케팅에도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스러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싶고 또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종종 되돌아보기도 한다


올 초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명상을 시간과 마음을 내어 시작했다. 명상을 쉽게 말하면 집중과 몰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제나 할 수 있었지만 생각의 산란함에 가로막혀 마음의 힘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낸 것이다. 명상을 하다보니 자연스러움에 대해 저절로 알게되는 면이 있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지금의 때를 아는 것, 아니 그보다는 지금을 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언제나 1시간전, 1달전, 1년전, 심지어 10년전 기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전에 비봉에 사는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우리는 집앞에 있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산물로 요리를 하며, 농사를 생활이자 놀이로 여기곤 했는데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어느 날 그분께서는 텃밭에 나가면 생각이 줄어들고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오히려 그 반대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농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근육을 움직이니 몸이 시원하고 머리와 정신이 맑아지는 면이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은 텃밭에 있지만 생각은 여기저기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초월주의 철학자인 소로우는 심플하게 살기위해서 하는 일을 한두가지에서 서너가지로 늘리지 말라고 했던가


몸과 마음과 행동이 한곳으로 모일 수 있다면 호미질 한번, 씨앗 하나에 온 우주가 고스란히 담길 것 같다. 그리고 그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갖아다 주겠지. 자연스러움은 시간을 초월한 세계, 과거도 미래도 없는 정말이지 지금, 지금만이 존재하는 삶이 아닐까. 


/2018년 완주로 귀촌한 신미연은 작은 텃밭을 일구며 제로웨이스트,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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