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이근석의 완주공동체이야기] 고향을 찾아가는 곤충2022-12-22

[이근석의 완주공동체이야기] 고향을 찾아가는 곤충

함께 모여사는 곤충


요즘 온 나라가 고향사랑기부금제를 도입하는 문제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물론 완주도 그 어느 지자체에 뒤지지 않기에 일찍부터 용역으로, 연구팀으로 준비를 해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부를 받을 수 있을까? 기부를 받은 재정은 어느 곳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기부를 한 사람에게 답례품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이것을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직이 있어야 할까? 등등 꼼꼼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은 어디일까? 자기 고향은 아니지만 장차 내가 여생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정할까? 기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복잡한 생각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곤충에게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맞는 일생을 보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예측건대 환경이 변하지 않고 맞는다면 태어난 곳에서 다음 세대도 이어갈 것으로 상상을 합니다만 파충류들처럼 자기 서식지를 가지고 대대로 이어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알을 낳기 좋은 환경조건이거나 종족보존에 적당한 환경이면 고치를 만들어 애벌레 집을 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동이 자유로운 것이겠지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고 경험하는 것으로는 맹꽁이가 대표적으로 자기 구역을 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살아가기에 그 곳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우리에게도 고향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정감이 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태어난 곳을 말할까? 아니면 성장기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곳을 지목할까? 그도 저도 아니면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살아가는 터전을 고향이라고 생각할까?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가장 우선으로 고향이라고 지칭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서는 자기가 죽고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곳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로 변했습니다.


예전에 흔하게 만날 수 있던 곤충들의 처지도 인간과 매한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살고자 하는 곳을 정하고 싶지만, 환경이 그리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살기 좋은 곳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은 자기가 살고 싶고 살맛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약간(?) 있지만 그것도 녹녹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먹이활동이 좋은 숙주식물이나 숲이 있어야 하고, 다음 세대가 태어날 수 있는 기온이 맞아야 하는 등 곤충에게도 필요조건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이를 만들어 갈 수 없다는 좌절감(?)이 있을 뿐입니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인간에게만 정감있는 단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입니다.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단어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나부터, 내 주변부터, 정책적으로 조금씩 변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중차대한 시간이라고 생각듭니다.


/ 이근석은 귀촌해서 고산 성재리 화전마을에 살고 있다.  전북의 제 21사무처장을 거쳐 지금은 소셜굿즈센터 이사장으로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2. 한 해를 보내는 음주
다음글
[신미연의 시골생활 이야기 30] 너와 나의 연결고리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