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2. 한 해를 보내는 음주2022-12-21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2. 한 해를 보내는 음주



한 해를 보내는 음주


<새해맞이 술빚기>로 술 이야기를 꺼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마지막 한 달 만큼은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마땅하건만 빼곡한 일정 메모는 차분한 송년을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로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직장이나 동호회, 동창회 등 여러 모임에서 술자리를 가져야 하는 때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겐 더욱 힘든 시기이고, 화려한 술집 네온싸인에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술꾼들에겐 동짓달 겨울밤이 짧기만 한 달이다. 식당이나 술집 유리창 너머로 술자리 풍경을 보노라면 고대 인류가 모닥불을 피우고 둥글게 앉아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연상되며 인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그들 앞에 놓인 술병을 물끄러미 보곤 한다.

 

술은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발효음식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이 웅덩이에 고여 풍기는 향긋한 액체에 이끌려 술을 발견했을 것이고, 농경사회에서는 곡물이 자연 발효된 술을 얻는 방법을 우연히 터득한 이후로 인류는 목적 의식적으로 술을 빚게 되었다. 거친 곡물이 어찌하여 꽃이나 과일의 아름다운 향기와 달콤한 맛을 만들어내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인류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다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 두려운 힘을 가진 이 액체를 신과 교감하기 위해 제단에 가장 먼저 바치는 고귀한 음식으로 사용했다. 이내 취해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며 인류는 문명을 낳고 발전을 거듭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공동체 집단을 만든 성공적인 생명체로 오늘날까지 군림해왔다.

 

그러나 술의 명암은 뚜렷하다. 찬란한 문명을 낳게 한 영감의 기폭제였으나 동시에 통제하지 못하면 인간을 무력하게 파괴하는 광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주신(酒神)은 어찌하여 아름다운 맛과 향으로 인간을 매혹하는 술에 그런 광기를 숨겨두었을까. 마치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듯 말이다. 대형마트 진열대에 놓인 수백 가지가 넘는 술병들을 보며 명과 암의 경계에 위태롭게 선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매일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쏟아져 나오는 술이 개인의 이성과 통제력 따위를 고려할 리 없잖은가.

 

처음 술을 빚어본 사람들은 술을 빚으며 너무 행복했어요.” “직접 빚어보니 술이 너무 소중해요.”라고 말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시간을 두고 얻어낸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자 술이 주는 풍요로운 감정에 대면한 순간이리라 짐작해 본다. 술을 진심으로 아끼면 함부로 마시지 않는다. 음미하게 된다. 곡식을 키워낸 대지와 자연, 농부의 노고, 술을 빚은 사람의 정성에 감사하며 말이다. 술을 빚는 사람은 자신이 정성껏 빚은 술로 마시는 이가 잠시 행복해지길 바라는 기원을 담아 빚는다. 그러한 술은 온화하고 다정하다. 혼자 마신다면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고요히 들여다보게 해주고, 누군가와 함께 마신다면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2022년을 힘겹고도 묵묵히 살아낸 우리 모두를 위한 격려로 한 해를 보내는 음주라면 좋은 사람들과/ 정성껏 빚어낸 술을/ 적당히/ 즐겁게 마시길 소망한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농촌별곡]
다음글
[이근석의 완주공동체이야기] 고향을 찾아가는 곤충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