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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 소농리 원소농마을] 이경배 어르신2022-04-20

[비봉 소농리 원소농마을] 이경배 어르신

"시골인심 다시 살아나야 해"


나고 자란 고향이라 적응시간도 필요 없이 모든 게 금방 익숙해져

기온이 높아지면서 길가엔 벚꽃잎이 흩날리고 논밭에는 작물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반갑지도 않은 잡풀이 수북하게 자라 농부들의 손길을 더욱 바쁘게 만든다. 마을길 따라 안쪽에 위치해 산을 등지고 있는 집에 사는 이경배(74) 어르신도 마찬가지였다. 경배 어르신은 그새 풀이 많이 자라 가지고 일단 손으로 풀 좀 뜯어놓고 있다며 웃었다.



타향살이의 귀향

경배 어르신의 어린 시절은 당시 누구나 그렇듯 고단했다. 먹을 것이 없어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겨웠다. 그 어떤 것보다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었다.


마을에 있는 비봉초등학교 나왔어요. 중학교는 8걸어서 고산, 봉동으로 가야 했어서 우리 때는 밥 좀 먹는 집안에서만 중학교 보냈죠. 어렸을 때 못 배운 게 한이 됐어요.”


그는 전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1978년도에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일은 시내버스 운전이었다. 시내버스 구간별로 운전기사가 배정되는데 경배 어르신은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다니는 구간, 영등포와 역전으로 돌아오는 구간을 달렸다. 30여 년 동안 버스를 운행한 어르신은 정년퇴직하고 10년 전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 집이 부모님이 살았고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을 거예요. 지역을 떠나더라도 고향에 대한 향수는 항상 가지고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직업병으로 몸도 안 좋아져서 맑은 공기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있어요.”


고향 집을 되찾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가 서울에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집이 팔려서 다시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 끝에 기회는 찾아왔다. 그가 이서에서 3년 동안 아파트 생활을 한 뒤에 현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지역 같았으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따로 걸릴 텐데 여기는 제가 나고 자란 곳이라 따로 정 붙일 시간이 필요 없었어요. 그래서 모든 게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예전 같지 않은 시골인심

시골에서의 정착은 곧 농사로 귀결된다. 크든 작든 남는 땅에 농사를 짓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경배 어르신은 크게 농사를 짓진 않지만 마당에 아담한 텃밭을 꾸몄다. 복숭아, 대추, 사과나무 몇 그루가 있고 곧 밭을 갈아서 땅콩을 심을 참이다.


형제처럼 지내는 유희남 어르신이 밭 한가운데에 있던 사과나무를 옮겨 심어주고 있다.


가을에 오면 뭐라도 줬을 텐데 지금은 먹을 게 없네요. 제가 먹으려고 심어놓은 것보다는 오다가다 누가 우리 집 오면 따먹으라고 놔두는 거죠.”


어르신은 요즘엔 시골인심도 각박하다며 잠시 푸념했다. 이웃이 뭘 하든 신경도 안 쓰는 세상이 되었다며 말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제처럼 지내는 이웃 동생 류희남(71) 어르신이 찾아왔다. 세 살 차이 나는 두 사람은 살뜰하게 서로를 챙긴다. 희남 어르신은 도라지가 들어간 배즙을 건네며 농약 뿌리는 기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곧이어 마당 한가운데에 있어 골칫거리였던 사과나무를 가장자리로 옮겼다.

 

제가 힘이 들어서 일을 못 하니까 이렇게 와서 도와주고 그래요. 가까이서 가족처럼 돕고 사니까 시골이 사람 살기 좋아요. 앞으로 우리 마을에 타향 사람들도 많이 들어와서 동네가 더 살아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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