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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시조 읊는 안광영 할아버지2019-01-28

[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시조 읊는 안광영 할아버지



[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시조 읊는 안광영 할아버지

 

망향의 슬픔, 옛 노래로 풀어내

 

환갑 넘어 시작해 국창부 합격

소양 쌓으며 건강도 챙겨


동장군이 잠시 물러간 1월 어느 날. 마을 어르신들을 길목에서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조에 조예가 깊은 분이 계시다는 첩보(!)를 듣게 되었고 마침 외출했다 마을로 돌아온 안광영(81)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대한시조협회는 전국적으로 170여개가 있다는데 안 할아버지는 그 중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완주군 봉동지회에 소속되어 있다. 마을회관에 앉아 그의 삶에 엮인 시조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용담댐 건설로 수몰 지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르신은 마을이 물에 잠긴다는 슬픔과 새로운 터를 잡아야한다는 걱정이 컸는데 안씨 시제에서 만난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밀양 박씨촌이여. 80%가 밀양박씨들이여. 시방 나 사는 집이 밀양 박씨가 6대를 살았는디. 안갑준씨가 가보자고 하더니 기와집이더만. 다 찌그러졌어. 그걸 내가 뜯어내고 지었어.”

할아버지가 시조를 접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시제에서 고등학교 교장이던 안성호씨가 축문을 읽는 안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단다.

진안군에는 전씨 다음으로 안씨가 많어. 집안 어르신이 나를 인간문화재 박인수 선생님이 가르치는 시조 회관으로 데리고 갔어. 내 시조 인생이 시작된 거지.”

할아버지는 퇴계 이황 선생의 시조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않느냐.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산청하리라를 한 수 읊어주셨다.

할아버지는 당시 환갑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3개월 동안의 피나는 연습을 통해 전남 구례 지리산 기슭에서 열린 남명 조식 선생의 탄신일을 기리는 전국남여시조경창대회에 참여했다. 이 대회에서 4, 시작한지 9개월 만에 부여에서 열린 대회에서 1, 그 후 산청에서 평시조를 통과했다. 그리고 시조를 배운지 만 2년 만에 서울 중구청에서 열린 본부대회에서 사설시조에, 서산에서 지름시조에 합격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국창부여. 시조 배우기에서 대학으로 비견할 수 있는 국창부를 유관순열사 탄신 102주년 기념 시조경창대회에서 통과했어. 200111일에 시작해서 나이 육십 넘은 나이에 만 36개월 만에 국창부를 합격한 거지. 그 이후에 대회장과 심사위원도 했어.”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시조의 매력은 무엇일까?

소리를 쫘아아악 빼니까 심폐기능이 좋아져. 그런 것도 있고 말하자면 소양이 되잖아. 뛰는 것이 아니여. 이렇게 따악 정좌로 앉아서 고개도 흔들면 안 돼.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손짓도 안 하고. 한 번 해볼게.”

가볍게 평시조를 읊었던 것과 달리 할아버지는 매우 바른 자세로 진지하게 시조를 읊어주셨다. 할아버지의 시조 시연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 전통이 단절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되었다.

옛날에는 많이 했대. 왜 시조가 성행했냐하면 일본 놈들한테 36년간 압박을 받았잖아. 해방이 되니까 막 그걸 부르는 거야. 부랴부랴 동네마다 시조 못하는 사람이 없었어”.

할아버지가 서계마을에 올 당시에도 동네에 시조를 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제는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는 시조가 계속 전승될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전해지길 바라는 소망을 내보이셨다.


 

/임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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