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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작은 동물농장 박기춘 할머니2019-01-28

[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작은 동물농장 박기춘 할머니



[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작은 동물농장 박기춘 할머니

 

토끼도 염소도 오리도 할머니의 식구

 

홀로 남은 엄마 걱정에

아들이 하나둘씩 갖다 놓아


서계마을 박기춘 할머니는 자식들이 하나둘 들여놓은 가축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마을을 거닐다 보니 어디선가 염소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작은 동물농장이 펼쳐졌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살이 오동통하게 찐 토끼 세 마리, 음메 하면서 밥 달라고 조르는 흑염소 세 마리, 스무 마리 정도 돼 보이는 닭과 두 마리의 오리가 보인다.

이곳은 마을에서 여러 동물들을 키우고 있는 박기춘(83) 할머니의 작은 동물농장이다. 할머니는 이날 경로당에서 쉬면서 ‘6시내고향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옆 마을에서 시집왔어. 조카며느리랑 다 거기서 살았고 우리 큰집도 저기 위에 있어. 큰 동서랑 조카들도 다 거기에 있으니까 집도 안내놨어.”

옆 마을에서 살던 기춘 할머니는 스물한 살에 결혼을 하고 남편의 고향인 이 마을로 이사 와서 집 짓고 지금까지 이곳에 남아 있다.

바깥양반은 돌아가셨어. 혼자 적적할까봐 자식들이 동물도 갖고 오고 그래. 아들이 친구들이 줬다고 토끼랑 닭이랑 두 마리씩 줬는데 그게 새끼 까고 그런 거지. 토끼가 처음에는 새끼를 14마리나 낳았는데 그게 너무 많으니까 동네사람들한테 몇 마리씩 줬어. 그랬더니 지금은 3마리 남았지. 우리 집 가보면 토끼 말고도 닭도, 오리도 여러 마리 있어. 우리 집 동물들 한 번 볼래?”



박기춘 할머니의 작은 동물농장에는 염소와 닭, 오리가 있다.


앞장서 길을 안내하는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경로당을 지나 가보니 이전에 염소 울음소리가 들렸던 동물 우리가 있었다.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흑염소가 눈에 띄었다.

닭은 한 스무 마리 되려나? 그럼, 알도 낳고 그러지. 근데 겨울이 되니까 추워서 잘 안 낳더라고. 가축들은 신경 잘 안 써도 알아서 잘 커서 좋아. 어떤 집은 물이 얼면 녹여서 주던데 난 안 그래. 그렇게 안 해도 되더라고. 그리고 우리 집에서 오리도 키우고 있어.”

또 다른 우리를 내다보니 닭과 오리가 여럿 보였다. 기춘 할머니가 먹이를 뿌리자 몰려든다.

“(동물들 키우는 거) 힘들어. 오토바이도 있으니까 내가 뭐 사다 키우고 그래. 아들이 필요한 것들은 알아서 사와. 먹이줄 때는 내가 사료포대 끌거나 주워서 먹여. 아까도 쌀이랑 뭐 묵혀둔 거 있어서 먹이고 그랬지. 가장 뿌듯할 때? 내가 밥 주면 그거 잘 먹고 잘 크는 게 제일 좋지. 내가 우리 쪽으로 가면 멀리서부터 밥 달라고 고함지르잖아. 어떻게 내가 오는 줄 알고 그런다니까. 그럴 때마다 신통방통해.”

할머니는 동물 얘기에 입가에 미소가 화사하게 번진다. 동물들에게 신경을 안 쓴다며 고개를 젓지만 할머니와의 대화 속에 동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지금은 동물들 키우고 오토바이 타고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빠. 근데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스개 공장에서 같이 일했어. 내가 공장을 한 3년 다녔어. 79세 되는 해에 그만 뒀지.”

과거 생각에 미치자 할머니는 자연스레 돌아가신 남편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의 안방에는 남편의 환갑잔치 사진과 영정사진이 걸려있다.

속 많이 썩이진 않았는데 술을 많이 잡쉈지. 술 한통 싣고 오면 내가 뭐라고 하니까 감추고 그랬다니까. 인정이 많아가지고 아무나 집에 들여와서 술 먹이고 그랬어. 베푸는 성격이야. 글쎄 예전에는 아랫동네 경로당에다가 텔레비전 사주고 그랬대. 그 때는 농사지었지. 우리가 먹을 만큼은 지었어. 다른 건 따로 안했어. 그 때는 노인양반들이 밥 없어가지고 우리 집에 오면 다 주고 그랬어. 찰밥도 한시름 주고. 여기서 밥도 싸갖고 보내고. 이전에 쌀 같은 거 팔아도 남 더 주고 그랬어. 고맙다고 이쁘다고 그런 소리 듣고 살았어. 그러니까 자식들도 복 받고 그런 거 같아. 지금 잘 살고 있잖아. 그렇게 베푸는 사람들이 나중에 잘 사는 거 같아.”

할머니는 남편이 떠나간 옆 빈자리가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종종 주말이 되면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매일 밥 챙겨줘야 하는 동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머니네 염소 한 마리는 새끼를 뱄다. 조만간 새 식구가 태어날 모양이다. 누군가는 떠나지만 새로운 인연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것이 삶인 것 같다. 그래서 기춘 할머니는 결코 외롭지 않다.



/강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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