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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스타를 소개합니다] 고산 황병곤 씨2018-12-04

[우리마을 스타를 소개합니다] 고산 황병곤 씨

[우리마을 스타를 소개합니다] 고산 황병곤 씨

귀농귀촌계의 고수



필자는 2014년에 귀촌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귀촌은 지금도 어설프다. 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성공적인 귀촌생활을 하고 계신 분을 만나 성공 요인과 충고를 듣고자 귀농귀촌 고수를 수소문한 끝에 주변에서 추천해주신 황병곤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즉 황 선생님이 내가 찾은 스타인 셈이다.

 


필자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2014년에 귀촌 했는데 현재는 이도저도 아닌 그냥 직업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귀농귀촌하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선생님 : 2011년경 퇴직하게 되었고 아내의 권유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완주군에서 퍼머컬쳐대학 교육프로그램을 받고 본인은 경기 군포의 전국귀농운동본부 소농학교프로그램을 받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어우리에 머무르며 생활하였고 후에 율곡리에 정착하게 되었죠.

 

필자 : 그랬군요. 저는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귀촌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힘들고 고민 많은 날들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점이 아무래도 생활인으로서 경제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완주군에서 지원하는 여러 사업을 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 부분을 해결하셨나요.

선생님 : 일단 저는 퇴직자여서 퇴직금이 있었고 여유자금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분들보다 그 부분에 대한 어려움이 다소 적게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저도 자유롭지만은 않았죠. 계속 가지고 있는 돈을 소진할 수밖에 없어 퀵서비스 일을 잠시 하기도 하고 나름 여러 노력들을 하여 기본생활비를 충당하였습니다.


필자 : 그렇죠? 저도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활이 불안정하니 농사에 전념할 수도 없었고 농사에 관한 장기적인 목표나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군의 멘토링 제도나 귀촌자 입주프로그램 등 많은 시도들을 하다가 결국에 다시 직업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생활은 논농사만 하시나요? 또 논농사로 생활이 가능한가요?

선생님 : 벼농사로 충분한 수익을 얻지는 못합니다. 벼농사를 시작하면서 여러 단계에 걸쳐 기계임대비와 추수 후 건조 도정과정까지 들어가는 돈을 제하면 충분한 수익이 없습니다. 그저 현상유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벼농사를 위해 못자리를 만들고 있다.


필자 : 그럼 벼농사만으로 생활을 꾸려가기가 상당히 어렵겠습니다.

선생님 : 그렇죠. 저는 논농사를 좋아하여 벼를 심고 아내가 밭농사를 맡아하고 있습니다.

 

필자 : 추수한 벼는 어떻게 유통하시고 있나요.

선생님 : 지인들을 통하여 모두 판매합니다. 친환경 우렁농법으로 재배하여 환경을 살리고 몸을 살리는 먹거리라고 소개합니다.


 

수확한 벼를 보며 뿌듯해하는 황병곤 씨.


필자 : 친환경 우렁농법을 어떻게 하시나요.

선생님 : 차남호 선생과 같이 고산권 벼농사두레모임에 있어 모내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같이하고 추수 후에 친환경 재배한 벼를 모아 한곳에서 공동건조 도정을 마칩니다. 유통은 각각 합니다. 5년째 하고 있습니다.

 

필자 : 벼농사 두레모임이 뭐죠?

선생님 : 두레모임은 벼농사의 활성화와 친환경농법을 통한 농업발전,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주민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황병곤 씨가 신나게 장구를 치고 있다. 풍물은 그가 여가를 보내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필자 :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선생님 : 귀농귀촌 준비할 때 기타를 배웠습니다. 하모니카도 불고요. 하모니카는 노래를 안 해도 되죠.(하하) 두레모임에서 풍물패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장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필자 : 마지막으로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선생님 : 농사를 꼭 지어야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 가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생각을 유연하게 가지세요.

 

 

황병곤 선생님 웃음에는 분명 행복함이 있었다. 선생님은 적어도 필자의 눈엔 귀농귀촌생활을 기꺼이 즐겁게 꾸리고 계신 느낌이었다. 지금 전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이냐고 묻진 않았지만 다시 직업인으로 살고 있는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니 그리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을기자 도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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