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최병희 어르신2018-04-03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최병희 어르신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최병희 어르신

평생 일만 했더니 어느새 꼬부랑 할머니


농사꾼 아내는 싫지만

그래도 당신과 또 결혼하고 싶어

 

정성스레 부추를 손질하는 최병희 어르신 


로컬푸드점에 납품 되기 전 저울에 올려진 부추.


뿌연 먼지가 하늘을 매웠다.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외출을 삼가고 마스크를 사용하라고 떠들어대지만 최병희(78)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 앞에 나와 있다. 작은 손으로 부추를 손질한다. 부추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 깨끗한 비닐에 포장하는 과정. 완주에 로컬푸드가 생긴 이후로 늘 해오는 일상이다.


오늘 날씨가 안 좋다대. 근디 마스크를 쓰면 답답혀. 하던 거만 잠깐 하고 들어가야지. 로컬푸드 내야 되거든. 노지 솔(부추)4월 말이나 나오는데 이건 하우스 솔이야. 우리 영감님이 병원에 있어서 못 베었더니 솔이 이만치 커버렸네. 할아버지랑 하면 솔도 많이씩 파는데 지금은 못혀. 200g씩 포장해서 로컬푸드에 내다 팔어. 재미나지. 용돈도 벌고.”



어르신과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을 삽과 갈퀴. 세월의 더깨가 물씬 느껴진다.


낯선 객을 보고도 어제 본 사람인마냥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병희 할머니. 그는 음력 3월 스무랫날, 구이 항가리에서 시집왔다. 스물셋의 그날, 복숭아꽃이 피었던 그날. 비 내리는 친정 신전마을 집 앞마당에서 혼례를 올리고 택시를 타고 대문안마을로 왔다. 그렇게 55.


결혼하는 날인데 비가 내리더라고. 그래서 사진도 마루에 올라가서 찍었어. 스물셋에 결혼했는데 그 나이는 철딱서니가 없잖아. 울면서 시집 왔어. 구이가 가찼긴 해도 친정을 자주 갈수가 있나. 설이나 추석이나 그럴 때나 한 번씩 갔지.”



대문안 마을의 파란대문집. 이곳으로 최병희 어르신이 산다.


시집온 후 병희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복숭아, 딸기, 담배 농사 등 많은 농사를 지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큰 농사 대신 머위, 시금치, 옥수수, 깻잎 등 조금씩 농사를 지어 로컬푸드에 내놓았다. 파란대문이 예쁜 집. 이 곳에서 부부는 다섯 자식들을 모두 키워냈다. 아들 셋에 딸 둘.


자식 다섯 여의고보니 산 거 없이 이렇게 늙어버렸네. 일을 많이 했더니 허리도 아프고 꼬부라지고. 일만 했더니 이 마을서 55년 산지도 몰랐어. 자슥들은 서산에도 살고 안양에도 살고 남양주에서도 살고. 자식들이 먼데 사니까 외로와. 그래도 애들이 많으니까 그건 좋더라고. 언니가 오늘 놀러오면 동생이 내일 놀러오고. 아버지 아프다니까 전화도 계속 와. 걱정이 많아 애들이.”


남편 양영철(81) 할아버지는 엊그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폐암이다. 11년 전 왼쪽 폐 수술을 했는데, 이번엔 오른쪽이다.

젊은 놈도 죽는디 그리 나이 먹으면 가야지. 왔다가 가는 게 인생이잖아.”

할머니가 덤덤하게 말을 내뱉으신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조용히.


그래도 일만 하고 살아온 인생인데, 가는 길 편히 가야는데. 암은 고통이야. 항암치료가 힘들어. 그것이 걱정이야. 고생할까봐서. 우리 아저씨가 젊어선 담배도 폈었어. 근디 끊은지 30년이 됐는데.”


평생을 함께 한 할머니의 단짝이자 분신. 병원에 있을 남편을 떠올리니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웃는다.


한 방(병실)에 다섯 명이 있어. 집에 혼자 외롭게 있는 거 보다 낫드만. 아직 수술 전이라 불편한 것도 없어. 재미있게 병원 생활하지. 물론 내 집, 내 식구처럼 편하진 않아도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살면서 넘() 괴롭히고 부모에게 못 할 일은 안 한 거 같어. 내가 다시 태어나면 농사는 안 지을라고. 이러코롬 땅속에서만 사는 게 험한 일이잖아. 근디 다시 태어나면 우리 아저씨랑은 또 살고파. 평생 내 속 안 썩이고 자슥들 낳고 알콩달콩 그렇게 살았어. 우린.”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비 내리던 날, 울음을 터트리며 집을 떠나온 그날의 기억처럼. 부부의 연을 맺고 지내온 평생의 기억이 알콩달콩이라는 형용사로 표현될 때 할머니는 슬며시 웃으셨다. 일만 하고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래도 함께여서 행복하노라. 그 웃음이 그렇게 말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주선이 할머니와 농사파트너 양상민씨
다음글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7년째 이웃 돌보며 노노케어 심산순 할머니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