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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곁 안남마을] 여름 초입 풍경2017-07-03

[느티나무 곁 안남마을] 여름 초입 풍경

안남마을 여름 초입 풍경

마을의 여름은 둥구나무 아래 양파가 쌓이는 계절




고산읍내에서 대아호 방면으로 가다보면 도로변에 풍성한 느티나무들을 볼 수 있다. 고산면 소향리에 위치한 안남마을이다. 이맘때쯤이면 이 마을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빨간색 양파망과 마늘을 쌓아놓고 장사를 한다. 느티나무와 양파, 마늘. 어떻게 보면 마을 이름을 설명하는 것 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로 마을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6월을 지나면서 여느 해와 다름없이 안남마을 느티나무 아래 양파와 마늘을 쌓은 할머니들이 나타났다. 여름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남마을의 양파수확이 한창이다. 안남마을 양파는 작고 단단해서 쉽게 물러지지 않아 찾는 이가 많다.



안남마을 둥구나무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제

이리오셔 아저씨. 이 골짝에 차 받치면 되지. 시원한 물이라도 한 컵 드릴까?”

지나가던 차량이 양파 더미 앞에 멈췄다. 충남 금산에서 양파를 사기 위해 온 반가운 손님이다. 소순덕 할머니는 처음 본 손님에게 친한 친구마냥 말을 건넨다. 양파 20kg2만원, 10kg1만원. 올해는 가물어서 지난해보다 양파 값이 2,000~5,000원 가량 비싸졌다. 마을 어르신들은 6월부터 양파를 팔기 시작해 늦으면 10월까지 판매한다. 고산의 양파는 작고 단단해 맛이 좋아 한번 구매했던 사람들은 또 오는 경우가 많다.


양파를 파는 소순덕 할머니가 잠시 느티나무에 기대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항상 이 자리가 내 자리여. 내가 여서 몇 십 년째 양파를 파는데. 계속 팔아주는 사람들 오면 진짜 고맙지. 내가 고생을 많이 해서 이렇게 늙어버렸어. 나는 남들보다 양을 적게 팔아서 이제 6망 정도만 더 팔면 돼.”(소순덕·77)


안남마을과 마을 앞으로 흐르는 만경강 사이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느티나무 숲이 있다. 모두 열여덟 그루. 과거에 마을을 수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보호수로 지정된 것들이다.


수령 200년 이상, 평균 수고도 30m가 넘다보니 이 느티나무 길로 들어서면 기온이 달라진다. 마을 어르신들은 느티나무를 둥구나무라고 부른다. 나무 그늘 밑 양파를 팔고 있는 강평리 어르신은 바람이 차가워 조끼까지 걸쳤다.


둥구나무 쪽은 시원혀. 냉장고지. 물가에 물이 더 있으면 지금보다 더 시원해. 근데 원체 가물어서 물이 없네. 지금 가물어서 위로 올라온 다슬기도 많을거여.” (강평리·69)


모정에 둘러앉은 주민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사진제공=황재남 사진작가)



농사꾼들에게 더위는 참아야하는 것

뙤약볕이 작열한다. 그야말로 그늘 한 점 없는 한 낮. 어르신들은 노란색 모정에 모이셨다. 이곳이 봄여름에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다. 사방이 트여서인지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경로당에 있으면 서로 얼굴만 쳐다보잖어. 근데 여기 나오면 차가 지나가는 것도 보고 사람들 일하는 것도 보고 재미져. 8월까진 여서 놀아 우린.”(오정자·74)


이야기의 화두는 단연 농사 걱정. 비가 오지 않아 다들 농사가 쉽지 않다.

올해 많이 가물었어. 비가 안 오면 농사 짓기가 2배는 힘들어지거든. 아직 비다운 비가 안 와서 걱정이야. 양파도 그렇고 비가 안 오니까 잘 안됐어.”(이순봉·85)


모종 앞 밭에는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허리를 기역자로 숙인 할머니가 있다. 이날 자외선 지수가 최고지만 모자 하나만을 방패 삼아 깨를 뿌린다.


시원할 때 골라 일 하면 일이 줄간. 농사짓는 사람들은 더워도 참고 해야 되는거여. 테레비 보니까 오늘 35도래. 올해 최고 덥다고 나가지 말랬는데 근디 어째 일해야는데. 내 나이? 늙어빠졌어. 팔십이살이여.”(82세 한 할머니)


송귀례 할머니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들깨를 심고 있다.



긴 가뭄 끝 단비가 내려 감사한 날

장마 끝나고 하면 이거(들깨) 죽으라구? 덜 자랐는데 내일도 비 온다고 하길래 심는거여.”

오랜만에 내린 비는 밤새 땅으로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아직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가뭄이 오래도록 계속된 터라 반갑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논과 밭으로 향한다. 송귀례 할머니 역시 새벽부터 바쁘시다. 숨 돌릴 틈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이 할머니의 일상. 이날도 쪼그려 앉아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능숙하게 열을 맞춰 들깨 모종을 심어낸다.


처음엔 들깨를 그냥 뿌렸는데 새가 다 주서 먹어버렸어. 콩은 봄에 심은 건데 새가 콩도 다 빼먹고 가물어가지고 저렇게 못 자랐네. 담번엔 촌으로 시집 안 갈텨. 비가 많이 오면 너무 와서 걱정, 안와도 걱정인게 걱정만하다 끝나버려.”(송귀례·71)


텃밭에서 호박을 따고 있던 임양순할머니



불편한 거동의 임양순 할머니도 간밤에 내린 비가 반갑다. 보행기가 없으면 걷기 힘들지만 천천히 텃밭으로 나가 비를 만진다. 야물게 연 호박을 따서 게 중에 커다란 것을 낯선 객에게 건넨다.


나는 말을 잘 못해. 아파. 가만히 보니까 호박이 두개 나왔길래 땄어. 하나 가져가. 된장찌개도 해먹고 볶아 먹어도 돼.”(임양순·88)


비 맞은 파란 호박을 건네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맙다. 가문 땅을 보며 한숨 쉬던 농부들도 비를 내려준 하늘이 고맙다. 이용창(68) 어르신은 농사는 하느님이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더 더워지겠지만, 비도 더 와야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감사하다. 그것이 어르신들이 세월을 통해 삶을 배워온 방법이다.


양파 마늘을 주로 재배하는 안남마을은 집집마다 헛간에 매달아 놓은 마늘이 눈길을 끈다. 양파수확이 끝나면 일손을 놓고 잠시 휴식이 찾아 온다. 안남마을엔 지금도 빨래터가 있어 주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안남마을은?

안남마을은 고산면 소향리 창포마을 용바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해 안남마을이라 붙여졌다. 과거에는 85호까지 살았지만 지금은 65가구·92명이 산다. 마을에는 60~80대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고 주로 양파와 마늘, 감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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