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완주의 봄날 - 호미 끝에 온 봄] 몇 발작 먼저와 파랗게 깨어나네2017-04-03

[완주의 봄날 - 호미 끝에 온 봄] 몇 발작 먼저와 파랗게 깨어나네

몇 발작 먼저와 파랗게 깨어나네




낮 기온이 영상 10도를 훌쩍 넘지만 봄바람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차가운 바람 끝. 그럼에도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은 파랗게 변해가는 밭과 그곳에서 풀을 메느라 구부정하게 숙인 허리들.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봄나물 향기. 농촌의 봄이란 늘 그렇듯, 도시보다도 늘 몇 발자국 먼저 온다.

 

봄 되니까 우리덜도 움직이지


고산면 명석마을의 양파마늘밭에도 봄이 왔다. 어르신들은 새벽 6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제법 뜨거워진 한낮 볕을 막아줄 모자와 토시, 장갑, 장화를 챙겨 밭으로 나와 늙어서 잠도 안온다며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나는 내 농사라고 할 건 없어요. 고추나 콩, 마늘 같은 거 쬐금 먹을 만큼만 하는거지. 여 이장님 밭 멘다 해서 나도 거들러 나왔어요. 동네에는 놉 할 사람이 없거든요. 다들 나이 많으니까.”(김옥순·77)



명석마을 양파마늘밭에서 어르신들이 풀을 메고 있다.



합쳐서 2,000여평이 조금 안 되는 양파마늘밭에서 8명의 어르신은 묵묵히, 호미를 든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늦게 메더라도 꼼꼼히 해야해. 허리 아파도 해야지. 우리는 용돈벌이 할라고 나왔어. 자슥들 몰래. 내가 비싼 우유를 먹는데 그 우유값이라도 벌라구. 집에 있음 심심하잖어.”(정정임·74)


아침엔 좀 쌀쌀했는데 일하니까 하나도 안 추워. 지금 나 땀 나는 거 안 보여요? 아이고, 덥네.”(김옥순·77)


쉼 없는 바지런함이 부른 허기는 배달 온 점심으로 채운다. 오후 노동을 위한 고마운 한끼. 이충노 이장은 행여나 밥이 부족할까 넉넉하게 시켜 지나가는 객까지 붙잡아 밥을 함께 한다.


옛날에는 집에서 밥을 싸가지고 와서 같이 먹었는데 요새는 식당으로 가거나 오늘처럼 불러먹기도 하죠. 사람들 밥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은 못 먹으면 민망하잖아요. 그러니까 여유있게 밥 시켜서 같이 먹는 거죠. 드시고 가요.”(이충노 이장·64)


"밥먹고 합시다!" 넉넉히 준비한 음식으로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봄이 되니 조용했던 시장도 시끌벅적


3월의 장날. 고산시장이 시끌벅적하다. 봄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길목이 비좁다. 이윽고 들리는 소리. 그리고 풍겨오는 고소한 뻥튀기 냄새.


어머니 이거 뜯느라 욕보셨네. 돈은 잘 버셨어?”

암만, 고마우이. 도라지는 안 필요혀?”


제사상에 올릴 나물을 사러온 손님과 나물 파는 할머니 사이의 정겨운 대화가 오간다.

시장 길목에 나란히 앉은 김점순(88화산), 정순목(87화산) 할머니는 갓 튀겨낸 튀밥을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앉아 있다. 두 어르신 모두 이른 아침부터 끼니도 거른 채 바삐 고산으로 왔다. 순목 할머니는 이곳에서만 40여년 째, 같은 자리에서 나물을 판다.


각시적에는 바빠서 못 댕기고 서른 넘어서야 장에 나와 이것저것 팔았어.”




김점순(왼쪽)할머니와 정순목(오른쪽)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물 팔아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직접 산과 들에 나가 나물을 뜯으신다. 멜라초, 도라지, 냉이, .


좀 더 줘요. 좀만 더 넣어. 아이, 쫌만 더요

나 뭐 팔으라고. 이거하느라 손가락이 다 짜개졌구만.”


더 달라하는 손님 말에 그만 하라는 말을 툭툭 내뱉으면서도 나물을 담는 할머니 손이 바쁘다. 봉지에 나물 한 움큼을 넣고서는 또 한 주먹 더 넣어 보낸다. 무릇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손주를 위해 나무를 심는 할머니


45일은 나무 심는 식목일이다. 덩달아 나무시장은 묘목을 사러오는 사람들로 눈코뜰새 없다. 고산 나무시장에도 사람들 발길이 이어진다.


나무 사러 양야리에서 왔어요. 집에 왕대추 200개 정도 심어놨는데 이번엔 다른 대추를 한번 심어볼까 해서요.”(유윤식·60)


사이좋게 파마를 만 동갑내기 세 친구들도 나무 앞을 기웃거린다.


우리 셋이 동갑친구들이거든. 장날 겸 해서 나무 살라고 왔지. 파마는 시장 온 김에 한거여. 블루베리 하나 심어놓으면 나중에 우리 손주 오면 따서 줄 수도 있잖어. 맛있응게. 근데 이거 싸게 안해주나? 싸게 좀 해주지.”(이성자·77)




고산 나무시장을 찾아 묘목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가장 많이 팔리는 나무는 과일나무. 장날이면 여러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40여년째 나무장사를 하는 신영자(67)씨는 나무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요새처럼 바쁠 때는 며느리가 일손을 거든다.


나무장사는 봄, 가을이 시즌이에요. 식목일 전후로 바빠요. 새벽 6시에 나와서 오후 4시까지는 있다가죠. 여긴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실수 찾는 사람이 많죠. 파는 종류? 하이고. 워낙에 많아서 나도 몰라요.”

 

겨우내 웅크렸던 자연이,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농촌의 봄. 수십 년 째 같은 자리에 앉아 봄을 사고파는 노점 주인, ‘자식들 몰래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이는 엄마, 그리고 손주에게 줄 과일나무를 심는 할머니.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사람들. 늘 그러하듯, 올해도, 또 봄이 왔다.



구이 호동마을에 곱게 핀 매화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완주의 봄날 - 망치소리와 함께 온 봄] 흙건축학교, 구이 호동마을에 흙집 사랑방 선물
다음글
[배꽃 피는 정농마을] 쨍하고 글 쓸 날 돌아온단다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