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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 그 주인들] 운주에서 찾은 낡은 가게 이야기2016-12-06

[오래된 것, 그 주인들] 운주에서 찾은 낡은 가게 이야기

장날에도 사람구경 힘들지만...소중한 일상

운주면의 낡지만 소중한 일상


나라가 시끄럽다. 매일같이 기가 막힌 뉴스가 쏟아지고 그걸 보는 많은 사람들은 가슴 한곳이 답답하다. 하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자신이 있을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세월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운주면에서 만났다.


조용하게 일상이 이어진다


운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타고 장선리에 들어서면 장날이면 사람으로 북적였던 운주시내가 나온다. 이곳에는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한 풍경들이 아직 남아있다.




2평 남짓 되는 작은 약국인 운주약국.


허름함이 정겹게 느껴지는 간판. 오래됨을 소리로 말하는 끼끽대는 미닫이 문을 열고 운주약국에 들어서자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나온다. 선반에 여러 가지 약품들이 쌓여있다. 게 중에는 빛바램으로 세월을 표현하는 것들도 있다.

저건 속에는 비어있어요. 우리 같은 시골엔 물건이 많지 않으니까 선반에 그냥 세워 놓은거죠. 이 집 자체는 오래된 집인데 얼마나 됐는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약국이름도 간명하다. 운주약국. 운주니까, 운주약국이라 지었다는 것이 주인장의 설명이다.

여기는 소화제, 설사약, 킬러 같은 걸 많이 사세요. 뿌리는 거. 근데 이런 것도 요새는 슈퍼에서 판다고 하대요. 시골은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잖아요. 저 선반에 있는 약포장도 겨울 햇빛에 색이 발한 거에요.”

 



운주에는 유독 지명을 상호명으로 하는 가게들이 많다. 운주세탁소, 운주약국, 운주미용실.


커피는 못 마셔도 남들 커피 타준 경력은 30년 이상


시골의 다방. 시간만 나면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화투도 치며 커피도 마시던 공간. 그랬던 다방이지만, 오늘날의 열번다방은 조용하다. 주인장 김순용(68) 어르신만 홀로 다방을 지키고 있다.

사람이 없어. 하루에 한 잔도 못 팔 때가 많지. 옛날에는 그래도 좀 됐는데 요새는 커피믹스도 있지 자판기도 있지. 음식점 가면 자판기는 공짜잖아. 그러니까 누가 다방에 와.”


커피를 시켰다. 여기 커피는 요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커피, 설탕, 프림 2:2:2 비율의 구수한 양촌리식커피다. 순용 어르신은 본인 몫으로 생강차를 탄다. 예전에는 한 잔에 500, 요즘에는 한 잔에 2,000원을 받는다.

나는 커피를 못 마셔.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나는 화투도 안 쳐. 그러니까 이 다방 손님들도 화투를 못 치지. 주인이 안 치니까.”




주인장이 타준 2:2:2 비율의 양촌리식 커피.


그는 직업이 한 두개가 아니다. 다방을 하면서 건너편 농약사도 운영한다. 예전에는 슈퍼주인도 했고 대전으로 가는 버스표를 파는 차부 역할도 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우회도로가 없이 이곳을 지나 서울, 대전으로 가는 버스가 많았다.


 여기가(다방 바로 옆 공터) 버스주차장이었어. 교통이 좋았거든. 봉동서도 오고 비봉서도 오고 저 대아리에서도 차 타려고 오고. 내가 날짜도 기억해. 2011330. 금남여객이 없어졌어. 그러면서 나도 슈퍼를 접었지. 예전에는 표 사고 껌 한통이라도 사갔는데 그런 게 없어지니까.”


다방 안이 깔끔하다. 손님이 없다고 다방을 치우는 일은 거르지 않는다. 90년대에 산 냉장고도 아직 생생하다. 열번다방도 여전히 문을 연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일상이다.

전화교환원에게 열번 대주쇼하면 우리집이야. 그래서 다방 이름도 열번다방이여. 뭔 뜻 있간. 손님 없어도 나는 뭐든 혀. 청소도 하고 앞에 왔다갔다하고. 근디 참말로 심심하네 요새는.”

 

운주에는 밥도 차려주고 차도 태워다주는 미용실이 있다



수리하기 전 운주미용실의 모습.


미용실이 문을 연지 35년이 넘었다. 단골들도 그만큼의 세월을 지나왔다.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젊은 아줌으로 파마를 말던 손님들은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들으며 미용실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머리에 수건을 싸고 파마를 말고 있는 손님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일 마냥 파마마는 종이를 접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손 놀기 뭐해서 하는거야. 파마값은 안 빼줘도 대신 여기 주인은 우리 점심을 후하게 차려줘.”(박별래55)


점심을 차려준다는 미용실은 살면서 들어본 적 없다. 주인장 이선재(62)씨에게 사연을 물으니 이유 하나 단순하다.

내가 배고픈 걸 못 참아. 점심시간 되면 밥 먹어야지. 근데 나만 먹을 수 있나. 같이 먹어야지.”



운주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은 스스로 머리를 감고 파마 중화도 한다.  매일 점심이면 주인과 손님이 같이 밥을 먹는다. 미용실 주인 이선재씨는 같이 먹는 게 좋아서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운주미용실을 찾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친구이자 이웃이다. 그래서인지 밥상도 인심이 넘친다. 이날 밥상에 올라온 반찬은 11가지. 얼마 전 담근 김장김치에 집에 남은 참치찌개, 동치미, 고추 장아찌 등.

가끔은 운전도 해. 멀리에서 머리하러 온 어르신들은 또 모셔다드려야지. 모른 척 할 수가 없잖아. 여기까지 오셨는데. 오늘은 장날이라 손님이 많아서 못가겠네.”


과거 미용사 선재씨는 미용실이 없는 다른 마을로 출장 미용도 나가고 마을의 결혼식 신부화장도 도맡아했다.

버스타고 저 골짝 피묵리까지 가서 파마하는 집에서 잠까지 자고 오고. 여름 한 낮에는 애기 업고 다니면서 했었어. 옛날엔 면사무실 1층서 합동결혼식 했었잖어. 막 열쌍이 하고 그랬거든. 드레스 대여도 해주고 신부화장이며 머리며 폐백까지 다 내가 했었어. 무지 바빴어.”


미용실의 미용사는 단 한명. 하지만 이 미용실은 서로를 돕는 착한 손들이 많다.

전에 바쁠 때는 내가 18명까지 해봤어. 다 혼자서 했지. 근데 가게가 바쁘면 여기 오는 사람들이 서로 바닥도 쓸어주고 머리도 그냥 혼자서 감고. 우리집은 파마 중화도 스스로 해.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었지. 얼마나 고마워 다들.”


 

운주미용실 앞에서 주인 이선재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오랜 단골이 오랜 벗이 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작용. 운주의 거리에는 그것이 있다. 시간이 만들어놓은 허름함과 사람 사이의 단단함. 그리고 추억. 지나가는 듯 지나가지 않는 듯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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