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농사는 무엇일까2020-12-30
자연스러운 농사는 무엇일까
토종벼 재배 농부 송광섭
송광섭, 전영화씨는 잘 늙은 시골집에 살고 있다. 주변의 산들처럼 낮고 소박한 집이어서 나는 그 집이 퍽 마음에 드는데 이들은 손사래를 친다. 자신들은 충분히 살기 좋은 집이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춥고 불편한 집이어서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들의 집을 찾아간 날, 김장준비로 한창 바쁜 오전이었다. 먹어보라며 주신 배추를 씹어본다. 달큰하고 고소하다. 김장거리들은 다 이집 근처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다. 똘똘하게 생긴 돌미나리는 논두렁 옆에서 자생한 아이들이다. 집 근처 산에서 캔 약초들로 육수를 끓이고 솥단지 한 가득 죽을 쒀놓았는데 토종쌀로 끓인 죽이다. 맛 좀 볼 테냐고 전영화씨가 묻는다. 아침을 굶고 온 터라 반색을 하니 토종쌀로 지은 밥도 한 대접 내어 놓으신다. 입 안에서 오도독 터지더니 진한 단맛과 함께 찰 지게 씹히는 맛이 좋다. 다 먹고 난 뒤에 단 맛이 입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아. 참 좋은 밥맛이다. 다양한 색깔의 쌀알만큼 이들의 이름도 다양하다.
“토종벼 중에서 멥쌀 종류는 흰베, 화도, 북흑조, 향미. 홍미(정미) 종류는 자광도, 백자광. 찰벼 종류는 긴 꿩꼬리찰벼(자치나), 대궐도, 자주꽃 찰벼, 녹토미, 붉은 찬나락을 심었어요. 토종벼, 신동진벼 50%씩 농사지어요. 처음에는 100% 토종벼로 농사지으려 했는데 아직 기반이 안 되서 반씩 농사짓는 거지. 씨드림의 지인을 통해서 보관하고 있는 토종벼 종자를 받아서 농사짓기 시작한 게 7~8년 되었네요.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판로가 없으니까 보통사람들은 짓기 힘들어요. 일반 벼들은 200평당 다섯 가마 나오는 것을 평균으로 치는데 토종벼는 두 가마 반 나오면 풍년이라고 했어요. 지금 쌀 수확량의 반절밖에 못 미치죠. 그러니까 위험수당 무릎 쓰고 보통사람들이 농사짓기는 힘든 거죠. 그래서 토종벼를 재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농부, 공동체, 학교에서 자급자족하거나 교육차원에서 재배하고 있죠.”
토종벼를 심어놓은 논의 도면도.
처음 토종벼로 농사지었던 해에 열댓 포대를 수확했다. 하지만 방아 찧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방아를 찧으면 현미로는 가능한데 쌀알이 작은 편이라 백미로 깎으면 싸래기로 다 빠져나오곤 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종쌀 도정에 맞는 정미소를 찾았고, 2년 전부터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네 정미소에서(우리 토종쌀을 소포장 판매하고, 다양한 쌀 관련 정보와 문화를 나누는 곳)쌀을 수매해 가기도 했다. 재작년에는 도정한 쌀 200kg, 작년에는 나락으로 1200kg을 실어가 숨통이 트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곳 사정도 여의치 않아 올해 거둬들인 쌀은 가족들이 다 먹어치워야 한다며 허탈하게 웃는다.
송광섭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
자연을 생각하는 농사
송광섭씨의 논두렁에는 버드나무, 벚나무, 온갖 풀들이 자생해서 자라고 있다. 해마다 원앙들이 날아와 알을 낳고 이곳에서 한철을 지내고 날아가고 또 돌아온다.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나무와 풀이 무성하기 마련인데 그의 논을 일부 사람들은 못마땅해 하곤 한다.
“우리가 너무 급진적으로 한 쪽에만 치우쳐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나도 아버지 농사지을 때 따라다니면서 농약 치는 농사를 지어봤지요. 약치면 또랑의 물고기들이 배 뒤집고 하얗게 죽어 있어요. 너무 많은 폐해를 봤죠. 건강이나 자연이 망가지는 것도 봤고 사람들이 변해가는 것도 봤고 단일작물 대량생산으로 돈 버는 모습도 봤고, 나도 그 과정에 참여를 하며 살았죠.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인정은 해요. 그래도 다시 회복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죠.”
무조건 자연적으로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먹고 사는 것이 부족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농법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돈 벌기 위한 농법이 아닌 자연과 사람을 살리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농법을 생각해보고 그 방식으로 서서히 전환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수많은 의문과 고민 끝에 송광섭씨는 토종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송광섭씨의 논 주변에는 온갖 풀들이 자생하고 있다. 물가에서 자라고 있는 돌미나리.
“토종종자 보전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외부투입 없이 자연스러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품종이 토종종자라고 생각했어요. 옛날 농사는 땅을 갈아엎는 거 말고는 거의 자연 상태에서 농사를 짓는 거잖아요.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고 농사짓는 것. 그 조건에 토종벼가 최적이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쌀이 가진 생명력이 좀 다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토종벼들은 자연적인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한 종자일 것이다, 그런 쌀을 사람들이 먹으면서 살면 참 건강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진짜 사람들이 사먹었으면 좋겠어요. 찾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버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
현실과 이상 속에서 여전히 갈등하며 살고 있지만 송광섭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놓쳤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 동안 얻은 것에 비해 잃을 것이 너무 많아요. 전체를 다 회복하진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후대가 꺼내 쓸 수 있게 보존하고 유지는 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뿌리는 살려놔야 해요. 조금 불편하게 살아도 잃어버리는 것들을 다시 찾는 것이 좀 더 가치 있는 것 아닌가. 사람들을 다시 회복시켜나가는데 중요한 요소 아닐까. 나도 이제 시작했으니 잘 몰라요. 하지만 살아온 경험으로 봤을 때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그 속에서 나오지 않을까. 누구도 안 해 봤으니까 모르는 일이잖아요. 나 혼자 하기 힘드니까 함께 하면 더 낫지 않을까.”
부인 전영화씨와 함께 빨래를 널고 있다.
올해는 완주에서 토종벼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송광섭씨에게 종자를 얻어 간 사람이 세 사람이다. 작년까지는 혼자였지만 이제 네 명이 되었다.
오랜 시간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송광섭씨 안에는 여러 광섭이 존재한다. 급진적인 광섭이는 자연적인 삶을 생각한다면 굳이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한다. 그저 주변의 들과 산에서 자생하는 열매와 풀들을 알아보고 먹을 만큼 채취하며 살면 어떨까. 현실적인 광섭이는 씁쓸하게 웃고 만다.
송광섭, 전영화씨가 올 봄 집 근처 가시오가피 새순을 따서 덖어 만든 차를 얻어왔다.
개운한 쓴맛이 난다. 얻어온 차를 마시며 얻어먹기만 하며 살아온 마흔 해의 세월을 생각한다. 농사짓는 지인들을 가끔 돕기는 하나 아직은 고양이 손이다. 내년 봄에는 바구니 하나 들고 이들 부부가 살고 있는 마을을 기웃거려봐야겠다. 그저 풀이었던 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싶다. 송광섭씨의 말과 행동은 느리지만 이상하게 계속 맴돈다.
느리지만 천천히 걸어가서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을 말들이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