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 2021.03.11

황운리 남쪽 망표마을

열정봉사꾼 이애순 할머니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1.03.11 15:02 조회 3,102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부녀회장 30 년 , 부당한 일은 못 참지 열려있는 대문 사이로 이애순 (83) 할머니가 보였다 .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니 집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안내한다 .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잠시 쉼터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

전주가 고향인 애순 할머니는 서울에서 화신백화점 안의 수혜점 ( 혼수물품 판매점 ) 을 운영하다가 망표마을로 시집오게 되었다 . “ 내가 아주 멋쟁이였거든 . 그러다보니까 시부모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 이를 이해할만한 사람하고 살아야 된다고 .

IMG 5909
IMG 5909

우리 아저씨가 부모를 여의고 혼자였는데 그래서 결혼했지 . 우리 아저씨는 처음 봤을 때도 인상이 참 좋았어 .” 다시 살아도 남편이랑 살 거라는 말에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

“ 군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러갔는데 , 거기 선생님이 죽어도 남편하고 같이 살 사람 손들라고 했는데 , 나만 들었어 .( 웃음 ) 나는 우리 아저씨랑 같이 살아야지 .” 흔한 술과 담배로 속 썩이는 일 없었고 크게 싸우는 일조차 없었다 . 부부는 오랫동안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

그러나 지금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넓은 집에는 애순 할머니만 남았다 . 할머니는 새마을사업과는 다른 개념으로 ‘ 지역사회 개발 ’ 이라는 일을 통해 마을에 지속적으로 봉사해왔다 . 할머니는 이때가 봉사활동을 해온 시작점이라고 했다 .

원래 망표마을은 냇가의 물을 떠다 식수로 사용했지만 지인을 통해 예수병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산 위에 간이상수도를 설치해서 지금도 그 물을 사용한다 . “ 내가 일일이 다 전화를 돌리고 몇 번 찾아가기도 했어 . 그래서 만들어 진거야 .

우리 부락에 필요한 일이잖아 .” 애순 할머니는 1972 년부터 30 년간 마을부녀회장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 망표마을은 상망표와 하망표로 나뉘어져있는데 당시 상망표는 임씨 , 하망표는 이씨 집성촌이었다 .

상망표 아이들이 학교를 가려면 하망표를 지나야만 했는데 길을 못 지나가게 하는 등 작은 마찰이 있었다 . “ 우리 애들이 자꾸 고생하니까 내가 ( 하망표 ) 여자들하고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결심했지 . 그래서 집에서 부고가 나면 쌀 한 가마씩 지급하는 쌀계 , 삼베계를 만들었어 .

그때 당시에만 해도 쌀 한 가마면 엄청 났어 .” 이후에는 함께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 관계는 점차 호전되었다 . 애순 할머니의 사진첩 속 젊은 시절 사진들. “ 지금은 화합도 잘 되고 좋지 뭐 .

부녀회 임원들이 몇 십 년 전에 부산에서 물난리 났을 때 쌀을 걷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헌 옷이랑 쓰레기도 일일이 분리해 팔아서 그걸 부녀회 자금으로도 썼지 .” 할머니는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 마을에서 부당한 일이 있다면 항상 앞장서서 해결했다 .

마을 내 돼지 축사 설립을 반대하는 집회에 앞장서거나 부당하게 하망표까지만 길이 깔렸을 때에도 군에 항의하여 길을 깔았다 . 할머니는 말을 하면서도 자랑할 게 아니라며 손사래 치셨다 . “ 행정이 잘못하면 당연히 혼내야지 . 알릴게 뭐 있나 .

그냥 내가 이렇게 한 것만으로 됐어 .” 애순 할머니가 복수초가 예쁘게 피었다며 마당으로 안내를 하는데 , 집에서 꽃장식이 달린 까만 뜨개 모자를 쓰고 나오셨다 . 잘 어울린다는 말에 쑥스러운 듯 미소만 머금는다 . “ 요새는 심심하면 테레비 봤다가 저수지 있는 곳에 운동도 한 번씩 가고 그러지 .

티비도 요새는 재미있는 게 없어 . 코로나 때문에 회관도 닫고 해서 영 심심하잖아 . 그나저나 복수초가 예쁘지 ? 난 꽃이라면 다 좋아 .”

현장 사진

열정봉사꾼 이애순 할머니 사진 1

첨부자료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