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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9.11.13

큰 사람 난다 거인마을

진상품 고종시의 고장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9.11.13 15:53 조회 3,47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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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감 , 미롭게 물들어가네 집집마다 깎은 감 주렁주렁 한국전쟁 이후부터 면소재지 돼 동상면은 유독 가을이 아름답다 . 그리고 이 풍경화에 빠질 수 없는 게 감나무가 아닐까 . 동상의 산과 들 어디에나 감나무는 있고 그 나무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계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

동상면 신월리 거인 ( 巨人 ) 마을에도 가을이 왔다 . 떠난 이도 남은 이도 백발이 되어가지만 가을은 한결같았다 . 늘 그렇듯 부드러운 볕이 마을을 감싸고 사람들은 묵묵히 일을 한다 . ■ 햇살이 따사로운 계절 최진남 (63) 어르신 마당에는 깨가 널어져 있고 손수 깎은 감이 매달려 있다 .

크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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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집 담장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 “ 지난해던가 학생들이 와서 벽화를 그렸어요 . 담장이 예뻐지니 집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 좋죠 . 저는 이 동네서 태어나서 다른 지역서 살다 20 여 년 전에 다시 고향으로 왔어요 . 우리 동네는 빈집이 많아요 . 외지 사람도 없고 .

공기 하나는 좋죠 .” 아내 홍경애 (57) 씨는 햇살을 쬐며 마당에서 쪽파를 다듬고 있었다 . 그늘에서 하시지 , 하니 따뜻한 햇살이 좋다며 움직이질 않는다 . 경애 씨는 “ 우리는 농사를 많이 짓진 않지만 먹고 사는 건 다 한다 . 콩하고 깨 , 쪽파도 하고 .

차가 없으니까 로컬푸드는 못 내고 봄 되면 전주 모래내시장에 871 번 버스타고 나가서 조금씩 판다 ” 고 말했다 . 거인마을의 최고령 어르신이신 강순희 (95)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산다 . 고양이 민트도 있다 .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말씀도 잘 하시고 기억력도 좋으시다 .

“ 내가 열일곱에 시집왔어 . 시방 구십다섯이야 . 이 마을서 60 년 넘게 살고 있지 . 아버지가 기집애라고 공부 안 시키고 산속으로 시집보낸 거야 . 고향이 삼례인데 가마타고 버스타고 다시 고산면에서 가마타고 여까지 왔어 .

요새는 날이 좋아서 이렇게 밖을 자주 봐 .” 순희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로 밭을 가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 그 모습이 가을날과 퍽 잘 어울린다 . 낯선 객에게 내어준 오렌지 주스도 시원하고 , 참 달다 . ■ 청년보부상 등장에 마을이 들썩 지난 금요일 , 거인마을 경로당이 왁자지껄하다 .

일이 많은 요즘 같으면 경로당이 텅텅 비어있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 일주일에 한 차례 생필품을 실은 청년보부상 차가 오기 때문이다 . 어르신들은 차가 올 시간을 맞춰 경로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일주일에 한 번씩 생필품을 판매하는 청년보부상 차량이 들어오는 날이면 경로당 앞은 분주하다.

완주공공급식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청년보부상은 로컬푸드와 생필품을 차 량에 싣고 마을을 순회하며 판매하는 이동 마켓이다 . 손주 뻘 되는 청년들이 물건을 가지고 오는데 라면 , 장류 , 빨래비누 등 먹거리부터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이 차에 가득이다 .

한분이 (83) 할머니는 이날 간장 , 찹쌀가루 , 설탕을 샀고 , 윤철순 (72) 할머니는 짬뽕라면을 샀다 . 철순 할머니는 “ 이 동네는 닭도리탕 같은 거 파는 데만 있지 음식점이 없다 . 짬뽕이 먹고 싶어서 샀다 ” 고 말했다 .

김연순 (82) 할머니는 “ 무거운 거 안 들고 다니고 여기서 사니까 참 좋다 . 다른 데서 사면 혹시나 다음부터 안 올까봐서 일부러 여기서 산다 ” 고 웃었다 . 보부상한테 필요한 살림살이를 산 어르신들은 이내 경로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신정임 (65) 어르신이 본인이 농사지은 고구마를 삶아낸다 . 김이 폴폴 . 고구마 단 냄새가 풀풀 . “ 호박고구마 잔챙이가 있어 삶은 것인데 동네 어른들보다도 내가 더 잘 먹었어요 .( 웃음 ) 우리 마을은 겨울에도 맨날 밥을 함께 먹는데 요새는 일할 철이라 모이기가 쉽지 않아요 .

오늘은 보부상 오는 날이니까 그 핑계로 모였네요 .” 간만에 이웃들이 모이니 옛날이야기도 스르륵 나온다 . 진남 어르신은 “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고산으로 장을 많이 다녔다 . 마재재를 넘어 나룻배 타고는 대아리로 넘어가야 했다 . 과거에는 마을서 복조리를 많이 만들었다 .

농토가 없어서 농사를 많이 안 지으니까 복조리 팔아 먹고 살았다 ” 고 말했다 . ■ 감 따고 깎고 말리며 가을을 지내네 동상면 감은 씨 없는 고종시로 과거부터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것으로 유명하다 . 다른 마을과 달리 대다수의 감나무가 산에 있다 .

남병관 (56) 이장 내외도 오전 7 시부터 산에서 감을 따고 있었다 . 그는 “ 우리 감나무도 산 중턱에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이전 시대였던 것 같은데 , 당시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산에 감나무 접을 붙이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그래서 감나무가 산에 많은 것 같다 ” 고 말했다 . 아내 권오경 (53) 씨는 전지작업 중이었다 . 오경 씨는 “ 농촌은 늘 바쁘지만 10, 11 월도 정신없이 바쁘다 . 10 월에는 감을 따고 11 월에는 감을 깎고 , 12 월에는 말리고 판매한다 . 감 따는 것도 지금 2 주째 하고 있다 .

오늘도 캄캄해질 때까지 할 생각 ” 이라고 말했다 . 고종시의 마을답게 가을의 거인마을은 감을 깎느라 분주하다. 마 을에서 감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집집마다 감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 이길례 (80) 할머니도 마당에 앉아 감을 깎고 있었다 . “ 지금 곶감 맹그러 .

이것도 다 때가 있어서 너무 일찍 깎으면 안 돼 . 마르면 냉장고에 넣어야 해 . 요즘 남의 집 감꼭지 따주는 일 하고 있어 . 뚜껑에 구멍이 있으면 못 팔아 . 그거 버리면 아깐 게 대야로 하나 가져왔어 . 그걸로 곶감 해먹을라고 .” 건너편 집에 사는 한분이 (83) 할머니도 마당으로 나왔다 .

이웃이 깎고 있는 감 중에도 무른 감을 골라 객들에게 건넨다 . “ 좀 떫으려나 ? 잡숴봐 . 쪼개 물렁거리는 게 맛있어 . 우리 동상 감은 씨가 없어서 더 맛나 . 수십 년을 먹었는데도 질리지가 않아 . 이거 하나 더 줄까 ? 더 먹어봐 .

하하하 .” [ 박스 ] 거인 ( 巨人 ) 마을은 거인마을은 마을에서 어질고 큰 사람이 많이 나오길 염원하며 지어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 인근에 묵계마을과 먹바위 , 필동 , 벼루소 등 선비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지역들이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이 예부터 인재들을 소중히 여겨온 것을 알 수 있다 .

거인마을은 과거에는 70~80 호가 살던 큰 마을이었다 . 현재는 40 여 가구가 거주한다 . 한국전쟁 이전에는 신월리가 동상 면소재지였지만 전쟁 이후부터 거인마을이 면소재지가 됐다 . 면소재지이다 보니 오가는 사람이 많고 주민 수도 많아 당시 마을에 주막만 5~6 개가량 있었다 .

매년 10 월이면 동상면 사람들이 거인마을의 감나무 아래에서 무탈한 감농사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

현장 사진

진상품 고종시의 고장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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