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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6.12.06

오래된 것, 그 주인들

운주에서 찾은 낡은 가게 이야기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6.12.06 15:49 조회 4,3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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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에도 사람구경 힘들지만...소중한 일상 운주면의 낡지만 소중한 일상 나라가 시끄럽다 . 매일같이 기가 막힌 뉴스가 쏟아지고 그걸 보는 많은 사람들은 가슴 한곳이 답답하다 . 하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 어제와 같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

자신이 있을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 .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세월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운주면에서 만났다 . ■ 조용하게 일상이 이어진다 운주로 향하는 1 번 국도를 타고 장선리에 들어서면 장날이면 사람으로 북적였던 운주시내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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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한 풍경들이 아직 남아있다 . 2평 남짓 되는 작은 약국인 운주약국. 허름함이 정겹게 느껴지는 간판 . 오래됨을 소리로 말하는 끼끽대는 미닫이 문을 열고 운주약국에 들어서자 2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나온다 . 선반에 여러 가지 약품들이 쌓여있다 .

게 중에는 빛바램으로 세월을 표현하는 것들도 있다 . “ 저건 속에는 비어있어요 . 우리 같은 시골엔 물건이 많지 않으니까 선반에 그냥 세워 놓은거죠 . 이 집 자체는 오래된 집인데 얼마나 됐는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 약국이름도 간명하다 . 운주약국 .

운주니까 , 운주약국이라 지었다는 것이 주인장의 설명이다 . “ 여기는 소화제 , 설사약 , 킬러 같은 걸 많이 사세요 . 뿌리는 거 . 근데 이런 것도 요새는 슈퍼에서 판다고 하대요 . 시골은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잖아요 .

저 선반에 있는 약포장도 겨울 햇빛에 색이 발한 거에요 .” 운주에는 유독 지명을 상호명으로 하는 가게들이 많다. 운주세탁소, 운주약국, 운주미용실. ■ 커피는 못 마셔도 남들 커피 타준 경력은 30 년 이상 시골의 다방 . 시간만 나면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화투도 치며 커피도 마시던 공간 .

그랬던 다방이지만 , 오늘날의 열번다방은 조용하다 . 주인장 김순용 (68) 어르신만 홀로 다방을 지키고 있다 . “ 사람이 없어 . 하루에 한 잔도 못 팔 때가 많지 . 옛날에는 그래도 좀 됐는데 요새는 커피믹스도 있지 자판기도 있지 . 음식점 가면 자판기는 공짜잖아 .

그러니까 누가 다방에 와 .” 커피를 시켰다 . 여기 커피는 ‘ 요즘 사람들 ’ 이 즐겨 찾는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 커피 , 설탕 , 프림 2:2:2 비율의 구수한 ‘ 양촌리식 ’ 커피다 . 순용 어르신은 본인 몫으로 생강차를 탄다 .

예전에는 한 잔에 500 원 , 요즘에는 한 잔에 2,000 원을 받는다 . “ 나는 커피를 못 마셔 .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 나는 화투도 안 쳐 . 그러니까 이 다방 손님들도 화투를 못 치지 . 주인이 안 치니까 .” 주인장이 타준 2:2:2 비율의 양촌리식 커피.

그는 직업이 한 두개가 아니다 . 다방을 하면서 건너편 농약사도 운영한다 . 예전에는 슈퍼주인도 했고 대전으로 가는 버스표를 파는 차부 역할도 했다 . 당시에는 지금의 우회도로가 없이 이곳을 지나 서울 , 대전으로 가는 버스가 많았다 . “ 여기가 ( 다방 바로 옆 공터 ) 버스주차장이었어 .

교통이 좋았거든 . 봉동서도 오고 비봉서도 오고 저 대아리에서도 차 타려고 오고 . 내가 날짜도 기억해 . 2011 년 3 월 30 일 . 금남여객이 없어졌어 . 그러면서 나도 슈퍼를 접었지 . 예전에는 표 사고 껌 한통이라도 사갔는데 그런 게 없어지니까 .” 다방 안이 깔끔하다 .

손님이 없다고 다방을 치우는 일은 거르지 않는다 . 90 년대에 산 냉장고도 아직 생생하다 . 열번다방도 여전히 문을 연다 .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일상이다 . “ 전화교환원에게 열번 대주쇼하면 우리집이야 . 그래서 다방 이름도 열번다방이여 . 뭔 뜻 있간 . 손님 없어도 나는 뭐든 혀 .

청소도 하고 앞에 왔다갔다하고 . 근디 참말로 심심하네 요새는 .” ■ 운주에는 밥도 차려주고 차도 태워다주는 미용실이 있다 수리하기 전 운주미용실의 모습. 미용실이 문을 연지 35 년이 넘었다 . 단골들도 그만큼의 세월을 지나왔다 .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젊은 아줌으로 파마를 말던 손님들은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들으며 미용실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 머리에 수건을 싸고 파마를 말고 있는 손님들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일 마냥 파마마는 종이를 접고 있다 . “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손 놀기 뭐해서 하는거야 .

파마값은 안 빼줘도 대신 여기 주인은 우리 점심을 후하게 차려줘 .”( 박별래 ‧ 55) 점심을 차려준다는 미용실은 살면서 들어본 적 없다 . 주인장 이선재 (62) 씨에게 사연을 물으니 이유 하나 단순하다 . “ 내가 배고픈 걸 못 참아 . 점심시간 되면 밥 먹어야지 . 근데 나만 먹을 수 있나 .

같이 먹어야지 .” 운주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은 스스로 머리를 감고 파마 중화도 한다. 매일 점심이면 주인과 손님이 같이 밥을 먹는다. 미용실 주인 이선재씨는 같이 먹는 게 좋아서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운주미용실을 찾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친구이자 이웃이다 . 그래서인지 밥상도 인심이 넘친다 .

이날 밥상에 올라온 반찬은 11 가지 . 얼마 전 담근 김장김치에 집에 남은 참치찌개 , 동치미 , 고추 장아찌 등 . “ 가끔은 운전도 해 . 멀리에서 머리하러 온 어르신들은 또 모셔다드려야지 . 모른 척 할 수가 없잖아 . 여기까지 오셨는데 .

오늘은 장날이라 손님이 많아서 못가겠네 .” 과거 미용사 선재씨는 미용실이 없는 다른 마을로 출장 미용도 나가고 마을의 결혼식 신부화장도 도맡아했다 . “ 버스타고 저 골짝 피묵리까지 가서 파마하는 집에서 잠까지 자고 오고 . 여름 한 낮에는 애기 업고 다니면서 했었어 .

옛날엔 면사무실 1 층서 합동결혼식 했었잖어 . 막 열쌍이 하고 그랬거든 . 드레스 대여도 해주고 신부화장이며 머리며 폐백까지 다 내가 했었어 . 무지 바빴어 .” 미용실의 미용사는 단 한명 . 하지만 이 미용실은 서로를 돕는 착한 손들이 많다 . “ 전에 바쁠 때는 내가 18 명까지 해봤어 .

다 혼자서 했지 . 근데 가게가 바쁘면 여기 오는 사람들이 서로 바닥도 쓸어주고 머리도 그냥 혼자서 감고 . 우리집은 파마 중화도 스스로 해 .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었지 . 얼마나 고마워 다들 .” 운주미용실 앞에서 주인 이선재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오랜 단골이 오랜 벗이 되는 , 보이지 않는 시간의 작용 . 운주의 거리에는 그것이 있다 . 시간이 만들어놓은 허름함과 사람 사이의 단단함 . 그리고 추억 . 지나가는 듯 지나가지 않는 듯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

현장 사진

운주에서 찾은 낡은 가게 이야기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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