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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8.02.05

오래된 간판에 말을 걸다

고산 용암상회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8.02.05 14:13 조회 3,87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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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용암상회 주인 따라 간판도 군데군데 주름살 대아댐 가는 길목서 40 년째 영업 “ 옛날엔 여기가 최고의 관광지였지 ” 고산 소향리 용암상회 오중선, 김정자 부부. 고산면 신상마을 ( 창포마을 ) 로 향하는 길목인 소향리에는 대아저수지가 있다 .

예전에는 ‘ 나이아가라 폭포 저리가라 할 ’ 유명 관광지였던 곳이다 . 볼 것 없던 시절에 댐은 귀한 볼거리였다 . 각지에서 구경 왔고 , 저수지 앞에서는 수많은 야유회가 열렸다 . 덕분에 그 길목에는 점빵이 많았다 . 오중선 (82)· 김정자 (77) 부부의 용암상회도 그 중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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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댐 인근 , 한 자리에서 40 여년을 지키고 있는 용암상회의 간판은 군데군데 갈라져있다 . 마을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증거다 . 부부가 지금 용암상회의 자리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이발소였다 .

신상마을위 운용마을에 살던 부부는 장사를 위해 이 자리로 왔는데 기술 없이 시작한 이발소 운영이 쉽진 않았다 . “ 장발 알지 ? 장발머리 나오기 전에 이발소를 혔어 . 사람 놓고 .

근데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 시켜서 하다 보니 잘 안되겠더라고 .” 저수지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부부는 업종을 점빵으로 바꿨는데 , 정말 장사가 잘 됐다 . 주머니에 돈이 가득 찰 때도 있었다 . “ 여그 대아저수지가 물이 가득차면 나이아가라 폭포 저리가라 할 정도로 명소여 .

봤어 ? 내가 나이아가라도 가봤거든 . 여그에 비 오고 댐에 물 넘치면 미국 사람들이 ‘ 원더풀 !’ 하고 그랬어 . 진짜랑게 . 옛날부터 익산사람들이 댐 보러 많이 왔어 . 시방 버스로 한 차 타고 와서 놀다가고 .

사람이 버글버글했어 .”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식료품들 눈앞에 그때 그 풍경이 펼쳐진다 . 입담 좋은 오 할아버지 덕분이다 .

장사가 잘 돼서 얼마를 벌었는지도 모를 만큼 돈 주머니가 빵빵하게 불렀던 이야기 , 정자 할머니가 댐 건설 인부들을 대상으로 함바를 운영했던 이야기 ,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등 부부는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 “ 여가 관광지여서 상점이 많았지 . 음식점도 너댓개 있었어 .

그래서 장사가 잘됐어 . 낚시 하는 사람들도 많았거든 . 하루에 소주 맥주를 열 박스씩은 팔았응게 . 지금은 한 박스 가지고 한 달 파나 .”( 오 할아버지 ) “ 사람 3~4 명 두고 함바를 했어 . 우리 집서 재우고 밥 해주고 . 꺼먼 솥단지 걸어 놓고 밥 하고 반찬해주고 .

좁아도 사람들 다 몰아넣고 밥 맥였어 . 아이고 일 많았지 . 일은 힘들었는데 수금할 땐 돈을 통에다 쓸어 받았지 . 근데 그 돈 다 어디갔나 몰러 .”( 김 할머니 ) 대아저수지에 놀러온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선사했을 카메라 이곳의 원래 이름은 ‘ 우리상회 ’ 였다 .

그러다 얼마 후 ‘ 용암상회 ’ 로 이름을 바꿨는데 , 바꾼 이유를 묻자 ‘ 내 맘이제 ’ 라는 답이 돌아온다 . “ 우리 집이고 우리 동네인 게 점빵 이름도 우리상회로 지었지 . 그러다 바꿨어 . 용바우가 옛날 운용부락 이름이었거든 . 용바우라고 부르다 다들 용암마을이라고 불렀어 .

그때는 이 동네 3 년만 살면 벙어리도 말을 한다고 했어 .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녔어 .” 이야기 도중 문득 정자 할머니를 바라봤다 . 분을 칠하고 진달래 빛깔 립스틱을 바르셨다 . 고우시다 . 할머니 , 어디 외출 나가세요 ? 아녀 , 나는 매일 화장해 . 해 버릇해서 이젠 안하면 이상해 .

젊을 적 워낙 바쁘게 살아 화장 한 번 하지 못했던 여인이 일흔일곱에 매일 화장대 앞에 서신단다 . 할머니 할아버지 . 지금이 좋으세요 , 예전이 좋으세요 ? “ 젊을 때가 좋았어 . 바빴어도 그 때가 좋았지 . 아픈지도 모르고 일 했거든 . 이젠 몸이 빠빳 하잖아 .

자식들도 다 크니 할 일도 없어 . 그 때가 좋았어 .”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돈통 삶에서 추억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 부부가 점빵을 찾은 낯선 사람들에게 쉬이 뜨끈한 아랫목을 내주고 옛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수만 가지 추억 때문이다 . 들려주고 싶은 추억이 많아서 .

부부가 빛과 바람과 눈과 비로 삭아가는 간판 아래에서 찍은 사진 한 장 . 이 이야기가 다른 낯선 이들에게 들려줄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주면 좋겠다 .

현장 사진

고산 용암상회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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