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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7.01.09

아궁이, 그 따뜻함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여태권씨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7.01.09 12:15 조회 4,16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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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나 짐승이나 따뜻한 밥 먹어야 사는 거 같제"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여태권 씨 비봉면 원봉산 마을의 한 소막에 작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 소 스무 마리가 있는 작은 막이다 . 이곳에 사는 소들은 특별하다 . 일반 사료가 아닌 소죽 ( 粥 ) 을 먹고 크는 소들이다 .

소죽을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된다면 , 이 소들이 특별하다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 매일 오후 여태권 (69) 어르신은 소막 안 아궁이 앞에 선다 . 솥에 물을 담고 땔감을 아궁이에 넣는다 . 그리고 수 분간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로 불을 붙인다 . 그렇게 20 여년 .

IMG 7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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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도 소죽을 끓이기 위해 아궁이 앞에 섰다 . “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 사료는 비싸잖아요 . 그리고 내가 은퇴를 해서 할 일이 없어요 . 이게 내 일이지 .( 웃음 )” 고집이다 .

고집이란 단어는 때로는 ‘ 아집 ( 我執 )’ 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 때로는 ‘ 소신 ( 所信 )’ 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 여태권 어르신의 고집은 그의 바지런함과 신념에서 비롯됐다 . 그의 소막에는 두 개의 아궁이가 있다 . 송아지에게 줄 소죽과 소에게 줄 소죽을 끓이는 두 개의 아궁이다 .

작은 난로는 완주군에 있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들어준 것이고 , 큰 난로는 6 년 여 전 여 어르신이 직접 만들었다 . “ 작은 건 화력이 좋고 열효율도 좋아요 . 일반 난로하고는 좀 다르대요 .

송아지나 다른 곳에서 계약을 맺어 들어온 소에게는 영양가 좋은 소죽을 먹이는데 그때 이 난로로 만들어요 .”  (위)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들어준 작은 난로. (아래)6년여전 여태권 어르신이 직접 만든 대형 난로에 소죽을 끓일 재료를 넣고 있다. 그의 움직임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

우선 가마솥에 일정량의 물을 넣는다 . 다음 파레트 등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단단한 도끼로 힘차게 내려친다 .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진 땔감은 아궁이에서 제 한 몸 불살라 빨간 불꽃을 일으킨다 .

“ 저것들에 불을 피워놓으면 불이 아주 예쁘게 올라와요 .” 소죽에는 쌀겨와 보리겨 , 싸래기 , 비지가 들어간다 . 된장이 들어가는 날도 있다 . 영양가 높은 재료들을 넣은 솥을 그는 한참을 휘젓는다 . 가마솥에 밥이 눌어붙지 않도록 .

“ 지금이야 저 재료들을 돈을 주고 사지만 과거에는 다 집에서 나왔어요 . 농사를 지으니까 . 평소에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얻어서 밥에 넣는데 된장을 넣는 날이 있어요 .” 하루에 두 번 , 오전 8 시와 오후 4 시가 소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다 .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제법 맛이 좋은가보다 . “ 제가 근처만 가도 먹이가 온 줄 알아요 . 배고플 땐 저를 보며 펄떡펄떡 뛸 때도 있어요 . 밥을 잘 안 먹으면 병이 난거죠 . 밥 줄 때 애들 건강 상태를 봐요 .

짐승도 사람같이 아프면 밥을 잘 안 먹거든요 .” 그는 소죽을 끓이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도 쉬지 않았다 . 그가 쉬면 소들이 밥을 굶어야 하니까 . “ 나는 안 먹어도 짐승들은 밥을 줘야 해요 . 제가 자유를 억압해서 우리에 들어가 있는 짐승들 밥도 안 줘봐요 .

내가 나쁜 놈이지 .”  (위)소들이 정성껏 끓인 소죽을 먹는다. (아래)어제 만들어 놓은 소죽을 소들에게 먹이고 있다. 그래도 겨울은 낫다 . 그러고 보니 일 시작 전 단단하게 여몄던 겉옷을 어느새 벗었다 . 추운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도 두 개의 아궁이 앞에서는 훈훈한 온기로 바뀐다 .

하지만 여름은 이야기가 다르다 . “ 여긴 여름엔 사우나에요 . 목욕탕 갈 필요도 없어요 . 땀으로 샤워를 하니까 . 옛날 사람들은 다 이렇게 했어요 .

20 여 년 전에 16 가정인가 함께 소죽 방식으로 시작했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은 다 사료 방식으로 바꿨을 거에요 .” 5 시 반 , 겨울의 짧은 해가 졌다 . 어둠이 오자 아궁이가 빛을 발한다 .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따스하다 . 포근한 겨울 밤이다 .

“ 저녁 6~7 시 정도면 소죽 끓이는 것도 끝이 나요 . 소죽을 끓이는 것이 제 하루의 마지막 일과죠 .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요 . 제 몸이 아파도 여기만 오면 나아요 . 소죽을 줘야 되니까요 . 사람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에요 .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죠 .”

현장 사진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여태권씨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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