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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1.01.18

대부산 아래 학동마을

산학이 날고 별은 빛나니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1.01.18 16:32 조회 3,4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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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이 날고 별은 빛나니 사계절이 다 좋았더라 학동마을을 찾은 날 , 마침 눈이 내렸다 . 마을을 둘러싼 대부산은 소박한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 오가는 사람 없이 고요한 마을 .

우리는 수만리보건진료소를 지나 300 년도 더 됐다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났고 ,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110 년이 넘은 학동교회가 서있었다 . ■ 주민 모두가 교인이었던 교회공동체 학동마을은 마을 앞산이 마치 학이 동쪽으로 날아가는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

DJI 0735
DJI 0735

소쿠리모양처럼 가구들이 모여 있는데 현재 40 호 가량 거주한다 . 고령자가 많아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은 없다 . 최근에는 외지에서도 몇 가구 들어와 마을 안쪽에 거주한다 .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학동교회 전경. 학동마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교회이다 .

과거에는 주민 모두가 학동교회를 다녔고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이 이뤄졌다 . 교회가 중심이 되다보니 예부터 마을에 흔한 주막이나 점방이 없었고 , 현재도 가든 같은 음식점 하나 없다 . 장영선 (85) 어르신은 그 역사의 산증인이다 .

그의 조부가 교회를 세웠고 나이 서른에 장로를 맡은 후 지금까지 맡고 있다 . 장 어르신은 “ 한국전쟁 이후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주민들 모두가 힘을 합쳤었다 . 나룻배를 타고 벽돌을 옮겨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3~4km 씩 되는 거리를 운반했다 .

현재 교회 벽돌을 살펴보면 모서리가 많이 깨져있는데 그때 났던 상처들 ” 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학동마을로 귀촌한 김영안-황에스더 부부. 마을 안쪽으로 쑥 들어가니 김영안 (82) 어르신이 집이 있다 . 김 어르신이 지나가는 차를 보고 대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한다 .

그는 전주에서 50 여 년간 한의원을 운영하다 지난해 1 월 마을로 이사 왔다 . 우연히 이 마을로 오게 됐는데 알고 보니 인연이 있던 마을이었다 . “ 어릴 때 친구랑 수만리로 놀러왔었어요 .

그때 우리 동네서는 남의 집 감 따려면 눈치 봤어야 했는데 여기 오니까 아주머니가 홍시 따는 망을 건네주더라고요 . 이런 데가 다 있구나 싶었죠 . 은퇴하고 지낼 조용한 마을을 찾던 중 지인이 이곳을 소개시켜줘서 왔어요 . 그런데 어렸을 때 감 따러 왔던 그 동네더라고요 .

그때 기억이 나서 두 말 않고 오게 됐어요 .” 아내 황에스더 (78) 어르신은 남편을 따라 시골에 오니 평소보다 할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 잡초도 뽑아야 하고 텃밭도 가꿔야 한다 . 하지만 이곳에서 보낸 모든 계절이 다 좋았다고 . “ 시멘트가 싫어서 이곳에 왔더니 풀과의 싸움이에요 .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왔는데 약으로 풀을 죽이긴 싫어서 시간 될 때마다 뽑는 거죠 . 이곳에 와서 하늘을 자주 보게 됐어요 . 낮에는 맑은 하늘이 예쁘고 밤에는 별이 보여 참 예뻐요 .” 어르신의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니 눈 덮인 산 위로 새하얀 구름이 펼쳐져있다 .

모든 계절이 좋았다는 어르신의 말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 ■ 코로나가 끝나 자식들 얼굴 봤으면 대문 안쪽에 장작 나무가 빼곡히 쌓여있는 집이 보인다 . 똑똑 . 오광호 (86) 어르신이 고개를 내미셨다 .

단지마을에 살던 광호 어르신은 대아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수몰 위기에 몰리자 이 마을로 왔다 . 학동마을에서 지낸지 올해로 57 년 차다 .

“ 예전에 형편이 어렵다보니까 다른 데로 이사 갈까 했는데 마을사람들이 표고버섯 농사 한 번 해보라며 추천해줬어요 .” 표고버섯을 30년 간 재배해온 오광호 어르신이 손수 곶감을 따고 있다. 그렇게 35 만 원 어치 나무를 사서 표고버섯을 재배했고 당시 1 년에 1,000 만 원가량 수익을 냈다 .

운 좋게 표고버섯이 한창 일본으로 수출되던 때와 겹쳤던 것이다 . 어르신은 지금도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 “ 표고버섯만 30 년 정도 해왔는데 그걸로 빚도 갚고 논도 사고 집도 샀어요 . 우리 집 버섯이 좋아요 .

다른 집에서 3 만원에 파는 걸 우린 6 만원에 팔았으니 말 다했죠 .” 화로를 들고 나온 차귀례 할머니. 차귀례 (89) 할머니는 집 앞에 세워진 자동차 앞에서 화로를 뒤적이고 있었다 . 전주에 사는 큰아들이 왔는데 추위에 그만 차가 얼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

“ 차 앞에 화로라도 가져다 놓으면 좀 녹을까 싶어서 불을 좀 가져다 놔봤어 . 시동이 안 걸리니까 우리 아들이 차를 못 내가잖아 . 오늘 춥긴 했나벼 .” 할머니가 어서 들어오라며 안내한 작은 방안은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 바깥과 달리 후끈하다 . “ 친정어머니를 따라 기독교 신자가 됐어 .

매주 일요일이면 학동교회 가지 .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 요새 교회도 많이 쉬었거든 . 조용하게 살다가 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그러다 갔음 좋겠네 .” 코로나19로 답답한 일상에 바깥으로 마실 나온 김순애, 양인순 할머니. 마을 곳곳 처마에 고드름이 달려있다 .

유독 따뜻했던 지난겨울에는 보기 힘들었던 고드름이다 . 우리는 골목에서 여든이 넘은 김순애 , 양인순 할머니를 만났다 . 방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까지 산책을 하고 있었다는 두 할머니 . “ 방에만 처박혀있으려니 답답해서 먼데는 못가고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왔다 갔다 하는 중이야 .

예배도 계속 드리다가 정부가 하지 말래서 안하고 있지 . 코로나가 좀 나아져서 자식들도 좀 봤으면 좋겠어 . 추석 때도 못 봤거든 .”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새해 소망은 별 게 없었다 .

새해에는 도시의 자식들이 마음 편히 어르신들을 찾아와 마을이 조금 더 북적대고 , 어린 손주들이 처마에 달린 고드름을 보고 호들갑 떨며 뛰어다니면 좋겠다는 것 .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그 날을 기다리며 2021 년 새해가 밝았다 .

[ 박스 ] 학동마을은 학이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 하여 학동마을이라 부른다 . 예전에는 학 학 ( 鶴 ) 자를 썼지만 현재는 배울 학 ( 學 ) 자를 쓴다 . 마을 앞에 학동천이 흐른다 . 장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친환경 국산콩을 이용한 청국장을 만들어 판매한다 .

학동마을의 청국장은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

현장 사진

산학이 날고 별은 빛나니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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