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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8.04.03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엄격해도 각박하진 않아라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8.04.03 14:12 조회 3,9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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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안마을 골목골목에는 오래된 농기구와 물고기가 산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았다. 제 소임을 다하려 짖어대는 개와 가끔 지나는 오토바이만이 이 고요한 마을을 흔들었다.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엄격해도 각박하진 않아라 물고기벽화 예쁜 25 번 버스 종점 마을 봄날 평온 속에 다시 맞은 농부의 시간 이혜원 (39) 씨의 밭에선 고소한 깨 냄새가 났다 . 작년 가을 냄새가 땅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와 이곳은 본시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 밭엔 풀이 무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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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의 봄은 진즉에 왔었는가 . 꽃 피어 예쁜 풀도 있었고 갓 땅을 비집고 올라온 애기 풀도 있었다 . 하지만 모두 농사의 적 . 한 번 허락한 풀은 금세 퍼져 단단히 뿌리 내릴 것이다 . 한 달 후에는 이곳에 참깨를 심어야 한다 .

호미로 파고 한 손으론 잡아 뽑으며 반나절 째 풀과 씨름했는데도 혜원 씨의 풀밭은 아직 한참 더 남아 있었다 .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된다고 . 농부의 시간은 엄격하지만 각박하진 않아 보였다 . 대문안마을의 모든 것이 그러해 보였다 .

종점인 대문안마을에 정차중인 25번 버스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25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25 번 버스가 지나는 길을 따라 차를 달렸다 . 대문안마을은 25 번 버스의 종점이다 . 버스는 경로회관 앞에서 20 분쯤 쉬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

주민들이 이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 배차간격이 2 시간 20 분으로 길어 필요한 시간에 버스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주민들은 군에서 지원하는 콜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

종점에서 출발대기하고 있던 버스기사 정문량 (46) 씨는 “1 년 동안 종점에서 태운 주민이 세 명 정도밖에 안 된다 ” 고 했다 . 대문안마을은 713 번 지방도 양 옆에 붙어 있는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이 대문안길 , 이성초등학교가 있는 서쪽이 대문안 1 길이다 .

혁신도시에서 김제로 넘어가다 이서면 소재지 못미처 713 번 지방도를 타고 쭉 내려오거나 전주에서 정읍으로 가다가 김제 대야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대문안마을이다 . 가구 수가 60 여 호가 넘는 제법 큰 마을이다 .

마을 안 곳곳에 그려진 물고기 벽화 파란 대문집 앞에서 낮잠을 즐기다 사진기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고양이. 마을은 고요했다 . 태풍이 시작되기 전처럼 농사가 본격화되기 전의 고요랄까 .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난 존재는 놀랍게도 고양이었다 .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도 당황하는 빛 하나 없이 여유가 넘쳤다 .

대개 동가식서가숙 하는 놈들이다 . 그리고 형형색색의 담벼락 . 붕어나 잉어 같은 물고기들이 담벼락을 헤엄쳐 다녔다 . 이 벽화 덕에 마을이 훨씬 정감 있게 다가왔다 . 아기자기한 벽화를 구경하며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 ‘ 대문안 14 번지 방복례 .’ 나무로 만든 예쁜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

마침 방복례 (72) 어르신이 막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 “ 막내딸이 해줬어 . 문패도 없이 살았지 .” 딸은 이렇게라도 평생 거칠었을 엄마의 삶을 꾸며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 어르신은 젊은 날 남편을 여의고 막노동과 식당일로 오남매를 키웠다 . 그 고단함이 눈에 선했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밭과 논 , 미나리 밭으로 이루어진 농경지가 펼쳐졌다 . 멀리 미나리 종자를 심고 있는 한 농부가 보였다 . 그는 체스터장화를 입고 가슴까지 물에 잠겨 일했다 . 미나리에 둘러싸인 데다 파릇파릇 풀이 올라온 논둑에 섞여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

집 근처에서 오늘 저녁 해먹을 반찬을 위해 쑥을 캐고 있는 김영애씨 김영애 (65) 씨는 그 근처에서 쑥을 캤다 . 그녀는 고창에서 시집왔다 . “ 이 동네 산지는 한 20 년 됐나 ? 아저씨 고향이 여기예요 . 전주서 살다가 아저씨 직장 그만두고 시골로 들어왔어요 . 처음에는 들어오기 싫었지 .

반대도 했어요 . 나는 농사 못 짓는다고 . 초반에는 전주가 그리 가고 싶드만 지금은 시골이 좋아요 . 일 좀 없으면 시내 ( 전주 ) 가서 친구도 만나고 놀다 와요 .” 그녀의 아저씨는 앞서 미나리 밭에서 종자를 심고 있던 농부 . 부부는 미나리와 복숭아를 재배한다 .

“ 지금은 농사 준비 기간이에요 . 오늘은 미나리 모 ( 종자 ) 심은 거예요 . 남편은 무뚝뚝해요 . 퉁명스럽다고 다들 그래요 . 그래도 잘해요 . 속 안 썩이고 .” 이요순 (78) 어르신은 복숭아나무 아래 작은 밭에서 풀을 매고 계셨다 . “ 토란하고 옥수수를 심을 거야 .

저쪽에 너마지기 땅이 또 있는데 들깨하고 땅콩을 심었어 . 로타리 삯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 세월아 가거라하는 거지 .” 어르신은 50 년 전 이 마을로 왔다 . 익산에서 시집왔는데 사방이 꽉 막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 그것도 모두 지난 일이다 .

적막한 길에 가끔씩 등장하는 조용한 소란, 오토바이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담장 위의 꽃무더기가 볕을 받아 반짝였다 . 가끔 오가는 오토바이가 정적을 흔들었다 . 마을은 전체적으로 정갈해서 곱게 늙은 할머니 같았다 . “ 나 ? 이름은 안 되고 성이 백씨야 .

백씨면 이 동네서 나 하나라 다 알라나 ?”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백 어르신 (77) 은 전주 가는 버스를 타려 바삐 걸었다 . 강의를 듣기위해 중앙시장에 가는 중이었다 . “ 스트레칭도 배우고 메이크업도 배워 . 금토일 빼고 매일 열려 . 11 시까지 가야해 .

안 그럼 못 들어가 .” 어르신은 큰길 삼거리로 나가 금구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전주로 간다 . 정류장에는 혈압약을 타기 위해 병원 가는 국 씨 (76) 어르신이 먼저 와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백 어르신이 “ 나라 국 ?” 하니 “ 칠국 ” 이라고 답하셨다 .

회관안에 붙어 있는 담당 공무원 알림판. 고맙습니다. 때는 12시. 이렇게 오손도손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함께 점심을 먹는다. 경로회관 입구 벽거울에는 마을 행정 · 경찰 담당 공무원의 사진과 이름 ,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 그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기분이 좋아졌다 .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 어느새 점심때가 된 것이다 . 외로운 어르신들은 이렇게 경로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먹는다 . 적게는 대여섯 , 많을 때는 열 분이 넘는 날도 있다 . 특별한 찬 없어도 홀로 먹는 밥보다야 백배 맛있을 터였다 .

마을 안 농경지 위쪽으로 1800 평 규모의 방죽이 하나 있다 . 주민들은 농업용 저수지였던 이곳에 2013 년 붕어와 향어 , 빠가사리 , 메기 등을 입식해 낚시터를 만들었다 . 마을 벽화도 이때 조성한 것이다 . 처음엔 주민소득을 위한 유료시설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

돈 안 받는다고 그냥 왔다가지 말고 군것질 과자라도 조금 사 경로회관에 넣어드리면 좋겠다 . 낚시터에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 논밭은 잿빛과 푸른빛이 뒤섞여 있었고 마을은 여전히 고요했다 . 며칠 뒤면 이 고요한 논과 밭이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

잠시 좌대에 앉아 부드럽게 움직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봄볕을 쬐었다 . 대문안의 열살 차 친구 중 형인 김경표 어르신이 밭을 돌보고 있다. 여러 빛깔을 가진 큰 물고기가 그려진 벽화 앞으로 발발이가 지나가고 있다.

현장 사진

엄격해도 각박하진 않아라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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