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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9.10.14

가을날에 옥포마을

가을신부 이승옥 할머니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9.10.14 15:30 조회 3,5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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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 가마 올려 타고 시집와 “ 아마 나밖에 없었을 걸 ?” 빗소리 들으며 열여덟 혼례 날 회상 옥포마을 경천저수지 위로 물안개가 떠다녔다 . 저수지를 지나 마을 윗길로 올라가보니 외양간이 나오고 건넛집에 호박넝쿨이 보였다 .

그 집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박을 나눠주는 ‘ 호박할머니 ’ 이승옥 (86) 할머니가 있었다 . 마을을 돌아다니는 우리를 보시고 “ 어여 들어와 ” 하며 반겨줬다 . 빗물을 훌훌 털고서 집 거실 바닥에 앉았다 . 할머니는 옛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인 듯 선명하고 세세하게 설명했다 . “ 어디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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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가 옥포마을로 시집왔을 적으로 돌아갔다 . “ 내 나이 열여덟 되던 해였어 . 우리 친정아버지가 이 동네 구장이었는디 시아버지 집에서 밥을 여러 번 잡쉈대 . 그 때 아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고 우리 딸을 여기로 시집보내야겠다고 생각했대 .

귀여움 좀 받겠다고 생각하셨겄지 .” 그렇게 양가 부모끼리 먼저 사돈을 맺고 혼인 날짜를 잡았다 . 여름은 더우니 가을이 좋겠다고 . 1951 년 선선한 가을날에 승옥 할머니는 신부가 되었다 . 그 당시 결혼식 풍경은 어땠을까 .

성북리 골짜기에 살았던 승옥 할머니는 경천저수지를 건너 옥포마을로 시집왔다 . 할머니는 “ 그 때 배 위에 가마까지 싣고 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 며 웃었다 . 결혼식은 집 마당에서 펼쳐졌다 . 마당 가운데에다 큰 상을 놓고 솥에다 큰 닭을 찌고 있었다 .

신부와 신랑은 곱게 차려입은 채 서로 절을 하며 식을 올렸다 . 할머니는 첫날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 “ 첫날 저녁은 못 잊는다 . 방에는 술 한 병과 예쁜 소반에 과일이 담아져있는 술상이 있었다 .

그 땐 문이 창호지여서 옆방에서 친척들이 구멍 뚫어가지고 술을 먹나 안 먹나 쳐다봤다 ” 며 웃었다 . 어려웠던 시절 할머니네는 ‘ 상 추렴 ’ 이라고 동네에서 돈을 많이 걷는 집이었다 . 남편은 농사짓고 할머니는 길쌈하고 베 짜서 옷 만들고 . 그렇게 세월을 바삐 흘려보냈다 .

그러던 중 지난 해 할머니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이나 적적함이 느껴질 터 . 하지만 다행히도 할머니에겐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간호사 국난영 (36) 씨가 있어 말벗이 되고 있었다 .

건강복지공단에서 나온 난영 씨는 일주일에 세 번 찾아 와 할머니의 건강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 허리와 무릎이 안 좋은 승옥 할머니를 위한 물리치료도 겸하며 말이다 . “11 시에 와서 40 분 동안 치료를 해드려요 .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까 최대한 빨리 많은 걸 하려고 하죠 .

저희가 하는 일이 어머님 같이 병원다니기 힘든 지역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라고 난영 씨가 말했다 . 할머니는 집에 난영 씨가 오고 나서부터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 부엌에 있는 호박 두 개를 내오며 “ 이번에 딴 건데 갈 때 가져가 ” 라며 챙긴다 .

또 거실에 있는 홍삼 절편을 쥐어주며 “ 나는 이가 안 좋아서 못 먹어 ” 라고 말한다 . 주변 사람들에게 호박을 나눠줘 ‘ 호박할머니 ’ 로 불리는 승옥 할머니 . 만나는 사람들마다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 처음 만난 낯선 이도 할머니에겐 곧 가족이다 .

현장 사진

가을신부 이승옥 할머니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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