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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8.11.05

가을 한자락 가척마을

근사한 마당 안 이재순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8.11.05 16:55 조회 3,6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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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한자락 가척마을 ] 근사한 마당 안 이재순 어르신 할머니의 마당엔 자식 줄 들깨 , 고추 한가득 스무 살에 건넛마을서 시집와 60 년 “ 문 열면 산 , 산 … 그나저나 볕이 참 좋네 ” 어디선가 ‘ 툭툭 ’ 소리가 들렸다 .

소리를 따라 가보니 이재순 (80) 할머니가 웅크리고 앉아 밤을 돌멩이로 두드리고 계셨다 . 이웃이 뒷산에서 주어온 밤이다 . 할머니는 소리를 따라 찾아온 낯선 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 가셨다 . 맛있는 밤을 챙겨주겠다며 . “ 우리 집에 밤이 겁나 ( 많아 ). 산에서 주워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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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놈 그냥 두면 속에 버럭지 ( 벌레 ) 가 파먹거든 . 그럼 못 먹으니까 삶아서 햇빛에 널어놓은 거야 . 빠짝 마르면 이게 또 맛있어 .” 할머니 마당은 근사했다 . 장독대 뒤 노란 단풍잎은 절정이었고 마당에는 들깨와 고추 , 밤이 제각기 색을 뽐내며 풍경에 녹아 있었다 .

“ 오늘은 볕이 좋네 . 비만 안 오면 조컸어 . 요새 왜 이리 비가 싸납게 오던지 , 들깨도 따다 말았네 . 우리 집 풍경이 뭣이 좋아 . 산만 보이잖아 . 문 열면 산만 보여 . 그래도 공기 하나는 좋아 .” 할머니는 건너편 마을 운주면 금당리에서 시집왔다 .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금당리 집에서도 문을 열면 산이 보였다 . “ 시월 스무날이었어 . 골짜기를 걸어서 시집왔거든 . 추웠어 . 손돌맹이도 얼어 죽을 날씨였어 . 그 시절엔 인민군들이 다 가져가서 먹을 것도 없었거든 . 그래도 살아지데 .

그렇게 이 마을서 60 년을 산거 아녀 .” 과거를 회상하던 할머니는 고생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 ‘ 고생 죽도록 했던 ’ 그 시절이 생각나 절로 손사래가 쳐진다 . “ 논도 밭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까 애들 밥 안 굶기려고 애썼지 .

산에서 고사리 꺾어다가 광주리에 실어서 20 리 되는 충남 양촌장까지 걸어가면 어깨에 고사리물이 들었어 . 말도 못혀 .” 할머니는 유독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으시다 . 감나무에서 따온 홍시를 휴지로 닦아 한입 먹어보라며 건네시더니 이내 햇볕에 말린 밤을 봉투에 푸짐하게 싸서 건네신다 .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먹으라며 . “ 원래 감농사를 많이 했었어 . 감하나 딸라면 모가지 쳐들고 따고 깎고 말리는데 얼마나 힘들었다구 . 지금이야 기계로 하루 6,000 개씩도 깎지만 우리 때는 감자칼로 다 깎았거든 . 이제는 감농사 안 해 .

우리 아저씨 병원가시고 나는 온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 팔이 너무 아파 . 수술도 7 군데 했어 . 원래 음청 건강했는데 이제 아프더라구 .” 할머니는 5 남매를 낳았다 . 그 중 막내딸은 외국인 남자와 결혼해 캐나다에 산다 . “ 자식들도 벌어먹고 산다고 사방에 살아 .

제일 가까운 데 사는 놈이 충청도에 아들이 하나 살어 . 우리 막내는 멀리 살어 . 노가대 다니면서 대학 보냈더니 홀딱 외국으로 가버리데 . 지들이 좋다는데 뭘 어째 . 사위 보면 웃기나 하지 뭔 대화를 나누겄어 .

그래도 매일같이 핸드폰으로 얼굴 보고 그려 .” 낯선 이의 목소리가 마당에서 계속해서 들리자 개 ‘ 호동 ’ 이가 쉬지 않고 짖어댄다 . 손주가 할머니에게 데려다주고 간 강아지이다 . “ 저것이 얼굴은 무섭게 생겼는데 얼매나 순한지 몰라 . 모르는 목소리가 들리니까 짖는구만 .

시끄러 이놈아 !” 마당에 곱게 펼쳐진 들깨가 마르고 있다 . 햇빛과 바람이 함께 말리는 중이다 . 방금 전까지 ‘ 온 몸이 아프다 ’ 던 할머니가 이내 일어나 들깨를 섞는다 . “ 가만 놔두면 마르질 않아 . 이렇게 한 번씩 섞어줘야 혀 . 이놈으로 들기름 해서 애들 줘야지 . 나도 좀 먹구 .

이제 나는 무서운 것도 없어 . 이 나이 되니까 무서운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어 . 그나저나 오늘 볕이 참 좋네 .”

현장 사진

근사한 마당 안 이재순 어르신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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