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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6.10.20

황금물결 출렁이는 고산 서봉마을

가을은 깊어가고, 골목마다 이웃의 정이 쌓이네

휘돌아 마을 한 바퀴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6.10.20 15:15 조회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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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뒤편에 선 산이 양팔을 활짝 펼쳐 마을을 품은 듯하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인 집들 앞으로는 너른 논밭이 펼쳐진다.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어 온 들판이 황금빛 바다로 변하는 곳, 고산 서봉마을이다.

가을이 되면 황금바다로 변하는 서봉마을 들녘
가을이 되면 황금바다로 변하는 서봉마을 들녘

>> 황금빛 가을걷이가 한창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는 양현식 이장의 마음은 벌써 추수철에 가 있다. 약 1,200평 논에 벼를 심은 그는 10월 10일 무렵부터 콤바인으로 수확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확한 벼는 농협에 넘겨 건조하고, 논에는 다시 마늘을 심을 채비를 한다.

“이달이면 온 들판의 벼가 거의 다 없어지겠지.” 한 해 농사의 끝이 다음 농사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 마을회관 뒤편 집에서도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이공달 어르신은 들깨를 베고, 곁에 앉은 강신화 어르신은 말려둔 땅콩을 하나씩 떼어 소쿠리에 담는다.

신화 어르신은 “나이가 들어 농사를 줄여야겠다가 싶다가도 자식과 손주가 오면 감 하나, 땅콩 몇 알이라도 쥐여주고 싶어 손을 놓지 못한다”며 웃었다. 들깨밭에서 만난 국문호 씨도 비가 오기 전 절반만 베어둔 들깨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잘 익은 대추와 무화과를 뚝뚝 따 주는데, 많다며 손사래를 쳐도 “가을철 시골 놀러 오는 재미가 풍성한 먹거리가 다야!”라며 대추를 더 얹었다.

>> 태양광 수익으로 마을의 미래를 그리는 햇빛소득마을 황금빛 들판 외에도 서봉마을에는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다. 서봉마을주민협의회가 운영하는 975㎾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다. 하수종말처리장 증설에 따른 주민지원기금 약 20억 원을 가구별로 나누는 대신, 주민회의를 거쳐 공동사업에 투자했다.

2025년 발전 수익은 약 1억 5,759만 원. 운영비 등을 제외한 약 1억 2,000만 원은 주민 복지와 공동사업에 쓰인다. 75세 이상 주민에게 매월 10만 원, 70대 주민에게 5만 원의 경로연금을 지급하고 경로당 점심 식비도 지원한다.

햇빛소득으로 함께 나누는 점심
햇빛소득으로 함께 나누는 점심

수익을 마을에 돌려주자는 취지로, 지급 기준 역시 주민총회에서 정했다. 운영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매년 2~3차례 마을총회를 열고, 매월 수입·지출 내역과 이사회 회의록을 주민협의회 카카오톡 단체방과 마을회관에 공유한다.

양현식 이장은 “태양광 발전 수익이 주민 복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마을복지관과 도서관, 요양원 등을 마련해 주민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햇빛소득으로 이어지는 밥 한 끼 점심때가 되면 서봉마을 경로당에는 어르신 삼삼오오 모인다. 태양광 발전 수익으로 경로당 식비를 지원하고 있어 반찬 배달이 오면 국과 반찬을 함께 나누며 식사하고 있다. 이날 밥상에는 구수한 아욱된장국과 장조림, 도라지무침이 올랐다.

어르신들은 둘러앉아 식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박영희 어르신은 “집에서 혼자 먹으면 조용한데, 이렇게 나와서 사람들하고 같이 먹으니 좋다”며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한 끼가 더 즐겁다”고 말했다.

혼자 먹는 밥은 한 끼로 끝나지만, 함께 먹는 밥에는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정을 나누는 시간이 더해진다. 마을에서 얻은 태양광 발전 수익은 이렇게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하고 어울리는 일상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포토부스를 찾은 주민들
포토부스를 찾은 주민들

>> 가을밤, 작은 영화관이 된 서봉마을 지난 8일 오후 5시 무렵, 마을에는 또 다른 분주함이 찾아왔다. 서봉마을주민협의회가 마련한 가을영화제를 앞두고 미디어센터 직원들이 스크린과 상영 장비를 설치하는 사이, 주민들은 작은 벼룩시장 앞에 모여들었다.

가판대를 책임진 최현화 씨의 입담에 구경하던 이들도 홀린 듯 물건을 예약하거나 지갑을 열었다. 결국 장이 선 지 30분도 안 돼 물건 절반 이상이 팔렸는데, 이렇게 판매된 금액은 서봉마을의 좋은 곳에 기부된단다. 조수지 총무의 아이디어로 마련된 포토부스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혼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하고 친구들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기도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웃음이 번졌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수지 씨와 양현식 이장은 벼룩시장과 음식 테이블에 알전구를 달고, 다른 주민들은 김밥과 치킨을 나눠 담았다. 아이들도 의자를 나르며 제 몫을 거들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영화 가 스크린에 펼쳐졌다. 조금 전까지 물건을 사고 사진을 찍으며 북적이던 마을이 이제는 가을밤의 작은 영화관이 되었다. 낮에는 들판에서 가을걷이로 바빴던 이웃들이 저녁에는 한자리에 모여 특별한 추억을 쌓는다. 황금빛 들판 위로 어둠이 내려앉은 서봉마을의 가을밤이 깊어 간다.

상영 전 함께 단체사진을 찍은 주민들
상영 전 함께 단체사진을 찍은 주민들

현장 사진

가을은 깊어가고, 골목마다 이웃의 정이 쌓이네 사진 1 가을은 깊어가고, 골목마다 이웃의 정이 쌓이네 사진 2 가을은 깊어가고, 골목마다 이웃의 정이 쌓이네 사진 3 가을은 깊어가고, 골목마다 이웃의 정이 쌓이네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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