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름이 적힌 비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넓은 밭에서 박순자(89) 어르신을 처음 만났다.
일손을 거들러 온 아들은 옆에서 고랑을 파며 가을배추 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순자 어르신은 땅콩밭에 앉아 땅콩의 흙을 사부작사부작 털어내고 있었다.가까이 다가간 객에게 “땅콩이 잘 익었는지 볼 참이었는데, 마침 왔으니 맛이나 볼래?”라며 깨끗한 물에 갓 수확한 땅콩을 씻어 건네준 어르신은 직접 땅콩 맛을 보고선 “풋풋한 맛이 나는 게 아직 덜 영글었다”며 웃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 농사짓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르신의 밭에는 들깨와 콩, 땅콩, 마늘, 대파, 고추, 시금치까지 온갖 작물이 가지런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당 한 편에는 어르신이 제일 좋아하는 단호박을 심어 기르고 있다.
얼마나 잘 자랐던지, 순자 어르신의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무성한 덩굴에, 그 사이로 잘 익은 단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서 평생 농사짓고 살았지. 예전처럼 크게 짓지는 않고 먹고 싶은 것 정도만 길러. 우리 집에서 다 먹으려고 이렇게 짓나.
자식들 주고 또 이웃들도 나눠 주는 맛에 하는 거지.” 누가 어떤 종자를 주었고, 이 작물에는 언제 약을 쳐야 하고, 아직 비어 있는 밭에는 무엇을 심을 것인지 순자 어르신이 기르는 작물 하나하나에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농사 이야기를 다 들려주신 후 무농약으로 정성껏 기른 고추도 한 움큼 따다 손에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땅콩 더 영글면 또 오라”는 순자 어르신을 다시 만나려면 가을이 한층 무르익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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