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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6.09.16

물길 따라 정이 흐르는 봉동 대복마을

1년만 살려다 30년이 훌쩍 여선희 이장

울산에서 연고 없던 봉동으로, 넉넉한 정에 이끌려 평생 고향됐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6.09.16 11:07 조회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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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마을을 오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부쩍 선선해진 9월의 아침에 만난 여선희(61) 이장에 대한 첫인상은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은 ‘멋쟁이’였다. 그다음으로는 활기 넘치는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모정
새로운 모정

부녀회장 시절부터 어르신들을 자식처럼 챙기며 봉사에 앞장서 온 여선희 씨는 1억 원 규모의 마을사업을 유치해 모정을 새로 짓고 회관 리모델링과 운동기구를 들여놓는 등 마을 발전의 일등 공신 역할을 해냈다.

주민들의 두터운 신망 속에서 8년 차 이장인 그가 사실 완주에 아무 연고가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95년, 울산 현대자동차에 다니던 선희 씨의 남편이 완주 공장으로 전근을 오며 동료의 소개를 받아 대복마을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막상 이사를 오니 사극에서나 볼 법한 부엌 빗장문과 그을음 가득한 옛날 집 구조에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도시 생활만 해온 그에게 시골 생활은 생소함 그 자체였다.

잔디인 줄 알고 마당 풀밭에 아이들을 뒹굴게 하며 과일을 깎아 먹던 모습을 본 이웃 인숙이 아줌매가 몰래 와서 진드기약을 쳐주고 아이들 건강을 걱정해주었다.

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어르신의 장례가 치러졌을 때, 동네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일을 분담하고 조문객에게 따뜻하게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 덕분에 1년만 살려던 대복마을은 평생을 품어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부녀회원들 함께 모정의 페인트를 일일이 긁어내며 단장한 모정 앞에 앉은 여선희 이장
부녀회원들 함께 모정의 페인트를 일일이 긁어내며 단장한 모정 앞에 앉은 여선희 이장

이장이 된 후에도 선희 씨의 마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목소리에 늘 귀를 기울이며 민요, 미술 등을 배우는 희망배움터 사업을 유치해 재작년에는 봉동읍행정복지센터에서 작품 전시회까지 열었고, 장수마을 건강사업과 주민건강사업을 통해 회관 건물을 짓고 야외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꽃밭을 가꾸기 위해 부녀회원들과 직접 땅을 파서 철쭉을 심고, 빛바랜 모정의 페인트를 일일이 긁어내며 손수 단장하던 매 순간이 그에겐 감동으로 남아있다.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사업이 생기면 발 빠르게 신청서를 작성하고 발로 뛴 노력 덕분에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다.

“이장이라는 직함을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갈수록 책임감의 무게를 깊이 느끼게 되었죠. 내년까지 채우고 나면 임기를 마치게 되는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시간을 뒤로하니 홀가분한 마음도 듭니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마을을 위해서 열심히 살게요.

시골이라 해서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고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늘 새로운 경험을 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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