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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5.07.07

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

그 흔한 간판 하나없이 견딘 반백년 세월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5.07.07 13:53 조회 4,48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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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게 운주 수청마을의 이름없는 점빵을 지키고 있는 박동순 할머니가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전으로 가는 운주 17 번 국도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 한번쯤은 봤을 수 있겠다 . 서금서금한 황토색의 미닫이문과 나무와 흙으로 단단히 지은 처마를 덧댄 신식 파란 지붕 .

소리 없는 광음을 지나온 세월의 얼굴을 가진 이 곳 . 50 여 년 간 이 자리를 지켜온 수청마을의 ‘ 점빵 ’ 이다 . 간판 하나 없지만 , 이 곳이 ‘ 점빵 ’ 임을 알리는 단서는 여럿 있다 .

IMG 5833
IMG 5833

‘ 담배 ’ 라 써 붙인 빛바랜 스티커와 작은 안내판 , 그 옛날 달았을 빨간 우표 안내판과 ‘ 리폰표 마요네즈 ’ 라는 광고판 . 그리고 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색 바랜 플라스틱 의자 하나 . 벌써 50 년이 넘었다 . 박동순 (80.

운주면 수청리 ) 할머니가 이 수청거리의 이름 없는 점빵 주인장이 된 지 . “ 기억이 생생허지 . 내가 6 남매를 이 점빵에서 키웠는디 . 안 해본 일이 없고 , 안 팔아 본 것도 없어 . 막걸리도 팔고 차표도 팔고 , 아랫방도 내주고 .

지금은 담비하고 애들 과자 같은 걸 팔지 .” 운주군 구제리에서 나고 자라 금천으로 시집간 박 할머니는 25 살 즈음 이 곳 수청리에 자리를 잡았다 . 이사 온 집이 마침 ‘ 담뱃집 ’ 이었고 , 박 할머니 부부가 그걸 이어서 했단다 . “ 다들 담배상회라 불렀어 여길 . 점빵에 무슨 이름이 있나 .

더 옛날엔 기냥 구판장이라 불렀지 .” 시원한 걸 찾는 손님에게 그리 크지 않은 가정용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료를 꺼내준다 . 집과 점방의 모호한 경계선이다 . 당신 것인지 판매용인지 모를 모기약 , 칫솔 , 반창고 , 소화제 , 과자 몇 봉지 등 . 가짓수는 많지 않아도 웬만한 건 다 있다 .

“ 보름에 한번 정도는 운주 시내 큰 슈퍼에 가서 과자나 라면 같은 걸 사가지고 와 . 이번엔 라면이 떨어져서 한 봉다리 사가지고 왔구먼 .” 빛바랜 칠이 떨어진 선반 위 , 딸기맛 웨하스와 짱구 과자 , 그리고 김치라면 등에서 박 할머니의 취향이 드러난다 .

이 수청마을 점빵은 마을의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 물건을 파는 슈퍼마켓에서부터 막걸리를 파는 주막 , 마을의 작은 터미널 , 뜨끈한 잠자리를 내주는 숙소까지 . 지금은 서너 가구 뿐인 동네지만 그 옛날에는 건너 건너 사람들이 많았다 .

점빵 안 , 박 할머니가 부엌으로 쓰는 공간은 지금은 싱크대가 들어섰지만 그 옛날엔 막걸리를 내주는 주막의 한 부분이었다 . 찰랑이는 막걸리를 가득 담은 항아리를 땅 속에 묻어놨던 공간 . “ 우리 집 마당에서 막걸리 마시며 윷놀이하던 사람들이 얼매나 많았는지 알어 ? 아이고 , 말도 못혀 .

그야말로 바글바글 했당게 . 그때 돈으로 막걸리 한 되가 250~300 원 정도 했어 . 동네에 사는 두부장사한테 두부를 사서 우리 집 김치하고 같이 안주로 내줬었지 .” 당신 자신들도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 인심 좋은 부부는 막걸리를 그야말로 퍼줬다 .

“ 막걸리를 외상으로 먹고 계절 지나서 갚은 사람도 있었고 , 몰래 먹고는 지금은 죽어버린 양반도 있어 . 우리 집 아저씨가 인심이 좋았지 . 외상값을 주면 받고 , 안주면 말고 .

다들 곤곤하게 사는 사람들이니께 .” 충남 금산과 완주 경천면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위치 탓에 차부의 역할도 착실히 해왔다 . 전주 , 대전 , 고산 등 각지로 오가는 사람들이 들리는 작은 터미널이었다 . “ 차 놓치고 발 동동거리는 사람들도 많았어 .

아 글씨 , 전주서부터 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어 . 충남 금산까지 간다는디 차비가 없다는 거지 . 거즌 80 리가 넘을거여 .

그래서 그냥 차비를 줬던 일도 있었어 .” 점빵 내 크게 붙여진 공중전화 안내 스티커에 대해 물으니 그 옛날 , 박 할머니 본인이 마을의 ‘ 전화 안내원 ’ 역할까지 맡았단다 . “ 그땐 지금처럼 집집마다 전화가 있는 게 아니잖여 .

부락마다 전화기가 하나씩 있었는데 , 우리 동네에는 이 점빵에 놨어 .” 전화가 오면 박 할머니가 마이크로 동네에 방송을 했다 . “‘ 어느 마을 누구씨 서울 자식한테 전화왔어 . 전화 받으러 오셔 ’ 라고 마이크로 방송을 하잖어 ?

그럼 저 멀리 윗 동네서부터 전화 한통 받을라고 겁나게 뛰어와부러 .“ 저무는 해를 보며 ‘ 대략 5 시쯤 됐겠다 ’ 며 시간을 점치는 박 할머니 .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빵은 할 일을 점점 잃어가고 있지만 , 이 수청마을 점빵에는 요즘도 지나는 사람들이 한번 씩 들린단다 .

이 곳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있기에 점빵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다 . “ 시골은 밤이 빨리 와 . 옛날에는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무섭지 않았는데 요새는 해가 지면 무서울 때가 있어 . 요즘은 점빵 앞으로 오가는 차 소리가 오히려 든든하지 .” 점빵에 담긴 박 할머니의 사연은 간명하다 .

재미난 취미이며 ,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소임이자 , 한 평생이 담긴 인생이다 . “ 점빵 ? 여그가 옛날에는 내 일터면서 집이었지 . 지금은 심심풀이로 하는 거여 . 이 곳에 내 인생이 다 있거든 . 지금보다 더 늙으면 이제 점빵 문을 닫것지 .

그때까진 할라고 .” 바깥쪽으로 난 점빵의 문을 열면 지금은 차들이 오가는 포장도로가 됐지만 , 예전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렸더랬다 . 박 할머니 당신 자신이 이 점빵에서 바라본 50 여 년의 세월이 , 날리는 흙먼지처럼 오늘도 켜켜히 쌓여간다 .

대전으로 가는 운주 17번 국도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운주면 수청리 수청마을의 이름없는 점빵. 오가는 손님은 없지만 누군가를 위해 문은 늘 열려 있다. 과자와 라면이 놓인 빛바랜 선반 옆, 박동순 할머니가 앉아 옛일을 회상하고 있다.

현장 사진

그 흔한 간판 하나없이 견딘 반백년 세월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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