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커버린 아욱 상추 내쑬 수 없어 보따리 싸" 버스 타고 전주중앙시장으로 채소 팔러 나가는 유말순 할머니 아침부터 볕이 뜨겁다 . 유말순 (79) 할머니는 볕을 피해 경로회관 건물 그늘 아래에 있다 . 아스팔트 바닥 위에 . 말순 할머니가 보따리를 싸들고 시장에 가는 건 열흘 만이다 .
오늘은 새벽 5 시부터 일어나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와 아욱을 뜯어 보따리를 쌌다 . 그리곤 마을로 들어오는 단 하나의 버스인 839 번을 타러 집을 나섰다 . 버스가 오는 시각은 오전 9 시 33 분 . 할머니는 30 분이나 일찍 집에서 나섰다 . “ 쪼깐해서부터 팔았응게 언제부터 팔았는가 모르지 .
아욱이나 상추가 너무 크면 가 . 그런데 아이고 그것도 안 갈라고 하는데 돈도 되질 않아 . 잘해야 돈 만원이여 . 키워서 내쑬순 없잖아 . 아까우니까 가는거여 돈도 안 나오는데 . 보따리가 돈 나올 거 하려면 여러가지를 더 해야는데 내가 기운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여 .
일주일에 뭐 가는 것도 아니고 . 커가지고 내쑤게 생겼으면 가 . 저번에 댕겨오고 나서 한 열흘 되얏지 .” 오늘도 말순 할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전주중앙시장으로 나가신다. 말순 할머니는 반곡마을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진안으로 시집가셨다 .
진안에서 딸 둘을 낳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 그리고 자식 넷을 더 낳았다 . “ 그때만 해도 진안에 돈벌이가 없어서 그래서 왔는디 . 별것 다 했지 . 시방은 인자 영감도 없고 내가 ( 농사를 ) 짓도 못하니까 . 텃밭 그것이나 좀 하고 . 그러지 뭐 .
돌아 당기면서 뭐 허들 못해 . 오래 못 걸어간게 .”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는 보따리를 싸셨다 . 그리고 전주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 아이들을 키워야했고 , 먹고 살아야했다 . “ 나는 중앙시장만 가 . 시방도 모래내 시장이 사람이 많고 팔기가 좋아도 안 가본 데라 못가 .
안 가본 데 가면 하나도 못 팔어 . 그래서 다신 안가 . 영영 안가 . 거기를 .” 유말순 할머니가 자신의 텃밭에 앉아 계신다. 그때도 , 지금도 푸성귀를 팔아 돈을 벌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60 여년간 시장을 향했다 . “ 오늘도 병원서 8 만원인가 쓰고 왔어 .
( 링겔 ) 매달고 그거 주사가 얼마고 여기다 맞는 게 얼마고 약 지어갖고 . 그렇게 돈을 써야혀 . 맨 쓸데여 . 뭐 사다 먹어야 되고 . 나는 과일을 안 먹으면 혓바늘이 돋아서 . 그런 게로 먹어야혀 .” 할머니가 시장으로 향하는 발이 되는 839 번 버스 .
하루 6 차례 , 마을에 들어오는 유일한 버스다 . “ 옛날엔 버스 55 번만 3 대가 댕겼어 . 근디 한대는 빼가지고는 차 시간이 드물었어 . 여기가 손님이 많지도 않으니 차를 더 오라고도 못하고 . 그렇게 살았지 . 지금도 하나 떨구면 넋을 놓고 기달려야 되야 . 겁나게 그냥 .
미쳐 죽을 때 있어 그냥 . 안 와서 차가 .” 할머니는 늘 비어있는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오신다 . 다 못 팔았을 적엔 남은 채소를 사람들에게 그냥 나누어 주신다 . 늘 그래왔다 . “ 시장서 집에 올 때 어떤 때는 2 시 반 차 타고 와 . 일찍 못 팔을 때면 4 시 반 차 타고 오고 그래 .
안 팔리면 그냥 주고 와 . 먹으라고 . 싸들고 올라면 힘들어서 못 싸들고 오거든 . 그냥 먹으라고 , 상추 먹을라냐고 물어봐 . 사람들한테 줘 그냥 . 그러고 살지 . 더럽게 돈 받으려고 더 받으려고 그런 승질이 아니여 .
주는 대로 하고 사는 대로 살고 그러지 .” 인사를 하고 떠나는 어린 객에게 할머니가 검은 봉지를 건네신다 . 아욱과 쑥갓이다 . 아니 , 이것은 할머니의 바지런함이다 . 할머니의 목소리이자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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