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바른 길을 따라 울긋불긋 깃든 풍경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 월의 끝 무렵 . 입추가 지난 지 꽤 됐지만 한낮의 햇빛은 여름만큼이나 따가웠다 . 마을 전체가 양지바른 터에 자리하고 있어 유독 볕이 잘 든다는 용진읍 상삼리 용암마을 .
뒤편으로 높지 않은 산이 있고 , 앞으로는 들과 하천이 어우러져 있다 . 이곳에는 모두 122 가구 260 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 ■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도란도란 마을을 찾은 첫째 날 , 초입에 다다르자 마중이라도 하듯 길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검정색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웠다 .
그러다 이름 부르는 소리에 졸졸 대문으로 들어갔다 . 그곳에는 정현금 (79) 어르신이 쪼그려 앉아 오전 내 밭에서 캐온 토란 껍질을 까고 계셨다 . “ 삶아서 나물해서 먹고 , 남은 것은 전 부쳐 먹으면 맛나 . 개는 큰아들이 서울서 데려왔는데 맡길 곳이 없어서 여기에 놓고 갔어 .
한 10 년 됐는데 그 뒤로 그냥 같이 살아 . 시커먼 게 깜둥이라고 부르고 깜이라고도 불러 . 종일 나를 따라다니면서 밭일 가도 쫓아오고 마당에서 일할 땐 곁에 누워서 자 .” 이날 오후 역시 산뜻한 바람만이 땀을 식혀주는 무더운 날씨였다 .
커다란 버드나무 그늘 아래 용암마을 토박이 3 인방 정우찬 (73) 어르신과 정왕모 (65), 이형근 (60) 씨가 모여 앉아있었다 . 노랗게 물든 들녘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참이었다 . 이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이니 라디오를 끄고 정왕모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
“ 이 나무가 아마 400 년은 더 됐을 거여 . 나무 밑이 시원하니까 오후에 나와서 이렇게 땀도 식히고 쉬는 거지 .
옛날엔 마을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는데 이제 토박이는 거의 돌아가시고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아 .” 정 씨가 옛이야기로 운을 띄우자 , 다 같이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 아이들끼리 모여 연 날리고 윷놀이하던 것부터 몰래 서리하다 들켜 꾸지람 들었던 일들까지 .
당시 옆집 사는 이웃은 남이 아닌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 정우찬 어르신은 “ 옛날에는 손으로 모심었으니까 서로 품앗이도 하고 같이 지내는 게 자연스러웠어 . 마을에 어르신이 생신이면 닭 잡아서 나눠 먹고 누가 돌아가시면 상여 멨지 ” 라며 웃었다 .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어르신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 ■ 옛 과수원 자리에 들어선 주택단지 좁다란 골목길을 차분히 걷다 보면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들녘과 잘 익은 홍시가 열린 나무 , 담벼락에는 울긋불긋 벽화가 물들어 있었다 .
한 붓 한 붓 주민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그림이다 . 이성구 (70) 이장은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한 바퀴 둘러보며 한편에 조성된 주택단지를 가리켰다 . “ 지금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자리가 원래 과수원 자리였어요 . 복숭아밭 , 배밭이었는데 그걸 개발해서 택지로 조성한 거죠 .
그러다 보니 동네가 많이 커져서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중입니다 .” 7 년 전에 전주에서 이사 온 오영경 (49) 씨는 집 마당에 다육정원을 조성했고 이번 마을 벽화 작업에 함께 했다 . 9 월에 열린 행사를 앞두고 밤낮없이 일했지만 당시를 떠올린 그의 입가에 는 미소가 번졌다 .
“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 이곳에 이사 오게 됐는데 전보다 정신적으로도 훨씬 좋아졌어요 . 이전에는 아파트라든지 혼자 지내는 게 익숙했는데 이곳에 오니 동네 주민들이 정답게 챙겨주시고 함께 협동하는 일도 많아서 좋아요 .” 마을 중앙 부근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안 .
정우식 (75), 허완순 (74) 어르신은 상추를 따서 박스에 담고 계셨다 . 부부의 손길은 분주하면서도 능수능란했다 . 우식 어르신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5 대째 마을을 지키고 있고 완순 어르신은 동상면 수만리에서 시집왔다 . “ 젊을 땐 과수원도 하고 벼농사도 했는데 이제 상추만 해 .
상추 농사한 지도 벌써 20 년은 됐겠네 . 둘이서 종일 일하면 15~20 박스 정도 나오는 것 같아 . 우리는 이 주변 말고 광주에다가 내다 팔고 있어 . 거기가 판로가 많거든 .” 우식 어르신 앞집에는 정신모 (76) 어르신이 산다 . 우식 어르신과 같은 동래정씨이고 정왕모 씨의 형이다 .
예부터 용암마을에는 정씨가 많이 살았다 . 신모 어르신은 젊은 시절 누나에게서 배운 미용 기술로 ‘ 용암 이용원 ’ 을 운영했다 . “ 내 나이 스무 살 때 시작해서 30 살 무렵에 가게 문을 닫았어 . 원래 누나가 미용했었는데 부산으로 시집가서 내가 그걸 배우고 자격증도 땄지 .
옛날에는 보리나 쌀 한 말씩 주고 그걸로 1 년 내내 깎아줬어 .” 안쪽 깊숙이 오르자 스물여섯에 마을로 시집온 임정옥 (78) 어르신이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계셨다 . 젊어서 갖은 일을 하신 탓에 허리가 많이 굽어 있었다 . “ 낮에는 밭에가 일하고 때 되면 들어와 밥하고 .
애들은 시부모님이 키워주셔서 어떻게 컸는가도 모르겠어 . 겨울에는 도랑가서 빨래를 하는데 어찌나 손이 아리던지 조금 지나니까 꼭 남의 손처럼 느낌도 안 나 .” 정옥 어르신은 고생스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 그 시절에는 힘들어도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다며 말이다 .
“ 옛날엔 집 한 채에 복작복작하게 살았는데 이제 혼자만 남았어 . 나 먹을 치만 텃밭 키우고 적적할 땐 현금 언니네 집에 놀러가지 뭐 . 요샌 트로트 듣는 게 재미야 .” ■ 용암마을은 마을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용용 龍 바위암 岩 이며 마을 끝자락에 있는 용바위에서 이름을 따왔다 .
용바위가 있는 마을 뒷산은 용의 기운을 받은 산이라 하여 용산이라 한다 . 옛날에 마을을 지나가던 지관이 용산 끝자락 부분에 둥구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하여 이후 둥구나무를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심은 지 몇백 년이 훨씬 넘은 이 나무는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키고 있다 .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