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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8.04.03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최병희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8.04.03 11:45 조회 3,80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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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최병희 어르신 평생 일만 했더니 어느새 꼬부랑 할머니 농사꾼 아내는 싫지만 그래도 당신과 또 결혼하고 싶어 정성스레 부추를 손질하는 최병희 어르신 로컬푸드점에 납품 되기 전 저울에 올려진 부추 . 뿌연 먼지가 하늘을 매웠다 .

신문에서 , 텔레비전에서 외출을 삼가고 마스크를 사용하라고 떠들어대지만 최병희 (78)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 앞에 나와 있다 . 작은 손으로 부추를 손질한다 . 부추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 깨끗한 비닐에 포장하는 과정 . 완주에 로컬푸드가 생긴 이후로 늘 해오는 일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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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씨가 안 좋다대 . 근디 마스크를 쓰면 답답혀 . 하던 거만 잠깐 하고 들어가야지 . 로컬푸드 내야 되거든 . 노지 솔 ( 부추 ) 은 4 월 말이나 나오는데 이건 하우스 솔이야 . 우리 영감님이 병원에 있어서 못 베었더니 솔이 이만치 커버렸네 .

할아버지랑 하면 솔도 많이씩 파는데 지금은 못혀 . 200g 씩 포장해서 로컬푸드에 내다 팔어 . 재미나지 . 용돈도 벌고 .” 어르신과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을 삽과 갈퀴. 세월의 더깨가 물씬 느껴진다. 낯선 객을 보고도 어제 본 사람인마냥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병희 할머니 .

그는 음력 3 월 스무랫날 , 구이 항가리에서 시집왔다 . 스물셋의 그날 , 복숭아꽃이 피었던 그날 . 비 내리는 친정 신전마을 집 앞마당에서 혼례를 올리고 택시를 타고 대문안마을로 왔다 . 그렇게 55 년 . “ 결혼하는 날인데 비가 내리더라고 . 그래서 사진도 마루에 올라가서 찍었어 .

스물셋에 결혼했는데 그 나이는 철딱서니가 없잖아 . 울면서 시집 왔어 . 구이가 가찼긴 해도 친정을 자주 갈수가 있나 . 설이나 추석이나 그럴 때나 한 번씩 갔지 .” 대문안 마을의 파란대문집. 이곳으로 최병희 어르신이 산다.

시집온 후 병희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복숭아 , 딸기 , 담배 농사 등 많은 농사를 지었다 . 나이가 들면서는 큰 농사 대신 머위 , 시금치 , 옥수수 , 깻잎 등 조금씩 농사를 지어 로컬푸드에 내놓았다 . 파란대문이 예쁜 집 . 이 곳에서 부부는 다섯 자식들을 모두 키워냈다 . 아들 셋에 딸 둘 .

“ 자식 다섯 여의고보니 산 거 없이 이렇게 늙어버렸네 . 일을 많이 했더니 허리도 아프고 꼬부라지고 . 일만 했더니 이 마을서 55 년 산지도 몰랐어 . 자슥들은 서산에도 살고 안양에도 살고 남양주에서도 살고 . 자식들이 먼데 사니까 외로와 . 그래도 애들이 많으니까 그건 좋더라고 .

언니가 오늘 놀러오면 동생이 내일 놀러오고 . 아버지 아프다니까 전화도 계속 와 . 걱정이 많아 애들이 .” 남편 양영철 (81) 할아버지는 엊그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 폐암이다 . 11 년 전 왼쪽 폐 수술을 했는데 , 이번엔 오른쪽이다 . “ 젊은 놈도 죽는디 그리 나이 먹으면 가야지 .

왔다가 가는 게 인생이잖아 .” 할머니가 덤덤하게 말을 내뱉으신다 . 그리고 말을 잇는다 . 조용히 . “ 그래도 일만 하고 살아온 인생인데 , 가는 길 편히 가야는데 … . 암은 고통이야 . 항암치료가 힘들어 . 그것이 걱정이야 . 고생할까봐서 . 우리 아저씨가 젊어선 담배도 폈었어 .

근디 끊은지 30 년이 됐는데 … .” 평생을 함께 한 할머니의 단짝이자 분신 . 병원에 있을 남편을 떠올리니 걱정이 되지만 , 그래도 할머니는 웃는다 . “ 한 방 ( 병실 ) 에 다섯 명이 있어 . 집에 혼자 외롭게 있는 거 보다 낫드만 . 아직 수술 전이라 불편한 것도 없어 .

재미있게 병원 생활하지 . 물론 내 집 , 내 식구처럼 편하진 않아도 그래도 어쩌겠어 . 나는 살면서 넘 ( 남 ) 괴롭히고 부모에게 못 할 일은 안 한 거 같어 . 내가 다시 태어나면 농사는 안 지을라고 . 이러코롬 땅속에서만 사는 게 험한 일이잖아 .

근디 다시 태어나면 우리 아저씨랑은 또 살고파 . 평생 내 속 안 썩이고 자슥들 낳고 알콩달콩 그렇게 살았어 . 우린 .”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 비 내리던 날 , 울음을 터트리며 집을 떠나온 그날의 기억처럼 .

부부의 연을 맺고 지내온 평생의 기억이 ‘ 알콩달콩 ’ 이라는 형용사로 표현될 때 할머니는 슬며시 웃으셨다 . 일만 하고 살아온 인생이지만 , 그래도 함께여서 행복하노라 . 그 웃음이 그렇게 말했다 .

현장 사진

최병희 어르신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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